말로 전해지지 않는 위로를 건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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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 고양이가 필요해, 지콜론북, 2016
지콜론북 서포터즈 3rd
삶의 시름을 달래주는 것이 두 가지 있다면
그것은 음악과 고양이다.
—알버트 슈바이처
반려동물이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그다지 기억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흔한 개 한마리 키워본 적도 없거니와 부모님도 그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으셨고, 나또한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문을 나서면 보이는 병아리 파는 아저씨. 노랗고 보송한 그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그저 바라보았을 뿐 동물을 키우는 것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어떤 친구는 그런 병아리를 사다 잘 키워나갔지만, 그렇게 커가는 병아리가 아닌 닭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친근함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언젠가 어릴 때 밤이 어둑한, 그렇지만 오렌지빛 가로등이 드문드문 비춰오는 강가 공원에서 인라인을 탔다. 사람이 많았고, 그렇게 달리던 찰나 흰 색의 개 한마리가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어쩐지 멈출 수가 없었고, 무작정 달렸다. 왠지 무서웠던 것 같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이 그 뒤를 쫓았고 개는 금새 돌아갔다. 나는 뒤돌아 멈춰 서 땀을 삐질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개에 대한 기억은 외갓집에 있다. 외갓집은 보통의 주택에 3층이었는데, 현관을 지나기 위해서는 그 앞에 있는 창고이자 개집을 지나가야만 했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가족이 외갓집을 가면 개는 멈추질 않고 짖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데다, 물지 않을 거라 했지만 개가 있을 때 맘편히 지나본 적이 없다. 아무도 없으면 누군가를 부르거나 그 옆에 있는 마대를 이용해서 문을 닫곤 재빨리 지나갔다. 그 때문일까, 물린 기억은 없지만 개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다. 개들을 보며 누군가는 그렇게 귀엽다 하지만, 그저 멀리서 볼 때 귀엽다고 느낄 뿐 어쩐지 가까이 하기에는 먼 존재였다.

특히 고양이는 그 때 당시 키우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우면 안좋다는 근거 없는 미신을 들은 것 정도랄까. 어느 틈엔가 고양이의 존재감이 솟아오르더니, 몇 몇 가수들의 곡 속에는 고양이를 주제로 한 노래도 생겨났다. 고양이는 특히 밀고 당기는 듯한 그 오묘한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점에 매료된다고들 한다. 그런 고양이 성격 때문일까 고양이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 일컫는데, 나는 어쩐지 그 호칭이 못마땅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애완동물은 내게 그저 남얘기일 뿐 그야말로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그런 찰나 읽게 된 ’고양이가 필요해’는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존재로서 고양이가 가진 매력, 그리고 그로부터 위로받으며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11명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냐하고 멀로는 절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모냐, 멀로와 함께하길 원했어요. 고양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저는 기꺼이 선택했고, 그 선택 덕분에 모냐와 멀로는 안전한 공간과 먹을 것이 생긴 대신 고양이로서 누릴 수 있었던 자유를 잃은 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도 고양이를 선택함으로써 자유를 잃은 건 마찬가지거든요. 그러면 양쪽 모두 공평한 거 아닐까요? 20쪽. 김규희 & 모냐와 멀로
미국에서 지낼 때 골프장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보니 러프에 빠져 갈 곳을 잃은 골프공이 참 많더라고요. 그런 공들을 줍다 보니 갈 곳 없는 골프공인 길고양이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에 띄지 않는 거친 환경 속에 숨어 있고, 어쩌다 사람 눈에 띄면 버려지고……. 골프공이야 소모품이니 버려질 수도 있지만 고양이는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는 건데 공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게 무섭더라고요. 22쪽. 김규희 & 모냐와 멀로
버스정류장의 한 면에는 길고양이에 대한 벽보가 붙어있다. 그 고양이들도 주인이 있었을까. 수많은 개들이 버려져 떠돌 듯 고양이도 마찬가지로, 인간에 의해서 선택되고 무책임하게 버려지곤 한다. 그렇게 떠돌다 소리 소문 없이 죽는 것보다 좋은 주인 곁에서 함께 한다면 행복한 것일까. 어쩌면 인간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것이 고양이가 살아 나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개와 고양이의 장단점을 비교하자면 개를 이길 수 없을 거 같아요. 개만큼 사람을 위하고 배려하는 동물이 없잖아요. 고양이가 사람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이 고양이를 인격화하고 고양이에게 바라는 점을 투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43쪽. 김소울 & 잭슨과 탈리
개와 고양이는 오랫동안 사람들 곁에서 반려동물의 자리를 차지해 왔다. 하치 이야기나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주는 안내견을 보면 개는 분명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들의 마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인간을 위한 반려동물이라는 조건을 모두 갖춘 것처럼 말이다. 반면 고양이는 개처럼 인간을 위해 목숨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특성과 잘 맞기 때문이 아닐까. 오랜 시간 텅 빈 집에서 고양이는 그 나름대로의 생활을 이어간다. 개는 애정이 많은 만큼 더 많은 관심을 요구하지만, 그 애정을 조금 덜어내면서 사람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고양이가 사랑받는 것은 현대의 생활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그 틈에서 고양이와 사람들은 줄다리기 하듯 공존하며 살아간다.
고양이뿐 아니라 다른 존재에 대해서도 관찰하게 되고 그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고양이 체온이 사람보다 2도정도 높다던데 꼭 그만큼 따뜻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61쪽. 이재민 & 시루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하고 다른 위로가 있는 것 같아요. 뭐라고 말을 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가만히 옆에 있어 주는 거. 그거 정말 하기 힘든 거잖아요. 101쪽. SOON & 미유와 앵두
사실 시를 쓰면서 가장 바랐던 건 위로였거든요. 전에는 아픈 사람은 아픈 시가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제 상처를 건드려 시를 꺼낼 때도 많았어요. 지금은 따뜻한 시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고양이들이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죠. 고양이의 체온에서 커다란 위로를 받았거든요. 제 시가 아픔을 아픔으로 위로하는 것에서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것으로 옮아갈 정도였으니까요. 141쪽. 길상호 & 물어 그리고 운문, 산문
망고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강아지하고는 또 다르더라고요. 속내를 드러내진 않는데 뭔가 빨아들이는 힘이 있어요. 강아지가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는 동물이라면 고양이는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요. 184쪽. 이엘 & 망고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보니 인간과 다른 생명체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것은 관계의 또다른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해불가능한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 알지 못하는 타자를 알고자 하는 관심과 애정에서 오는 관계의 또다른 모습. 그것은 인간관계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말 못하는 고양이가 위로가 된다는 것은 인간 자신이 고양이라는 존재를 매개로 스스로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소통불가능성을 전제로 인간이 고양이에게 느끼는 말없는 위로이다. 아니 어쩌면, 언어를 뛰어 넘어 서로에게서 전해지는 감정으로 조금이나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관계 속에서 인간과 고양이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유지면서도, 점차 서로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분명 책임과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들에게서 얻는 것들보다 잃는 게 많다고 생각했던 내게 11명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고양이가 보여주는 공존의 방식은 분명 다른 형태였다. 고양이들은 타인보다 더 가까이서 그들을 위로하고 곁에 함께였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그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 그 자리에서 고양이는 사람들 곁에 머물며 또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저 들어주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생각하는 또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야말로 고양이가 인간에게 주는 따뜻함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예술가들과 고양이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피어난 에피소드를 고양이의 관점, 그리고 사람의 관점에서 각기 서술해 생경한 즐거움을 준다. 고양이도 정말 그렇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개연성있는 이야기들이 한편의 작은 동화를 읽는 것 같다. 그러다 마침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가 떠올랐다. 고양이의 시점에서 자신의 여주인을 바라보며 묘사하는 풍경이 사뭇 색다르다. 책을 읽고 나면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일지만, 그것은 다만 순간적인 것임을 안다. 책을 통해서 나마 고양이의 사진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풍경을 상상해 본다.
글 / naut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