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의 은사님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기억이 흐릿합니다. 체벌이 만연했던 시절, 혹자는 선생님들의 폭력을 떠올리며 이를 갈기도 하지만 저는 그저 인상적인 기억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선생님과 깊은 교감과 친교를 나누지 못한 탓이겠지요. 때로는 무관심이 폭력보다 깊은 흔적을 남기는 듯합니다.그래도 고1 때 선생님과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은 고1 겨울방학 때 저를 포함한 학생 8명을 계룡산에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엔 무릎까지 눈이 쌓인 험한 산을 정상까지 올랐지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습니다만, 저에겐 그때의 일이 선생님과 함께한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부산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최범준 선생님은 저의 오랜 지인입니다. 그의 책 『교실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당신에게』를 읽으며 지난 학창 시절을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 모습도 돌아봤습니다. 저 또한 8년간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같은 교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공교육 교사와는 처지가 많이 다릅니다. 강사로 지내며 ‘교실이 무너졌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 책임을 사회와 학교에만 돌리며 외면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괜히 부끄러워집니다.이 책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교실 현장에서 교육의 본질과 학생의 마음을 고민해 온 한 교사가 학부모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은 것입니다. 학생과 함께 혼란의 시기를 건너는 학부모를 교사의 조력자로 여기며 건넨 편지입니다. 한편으로는 저처럼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냉소적으로 교실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는, 무관심하고 조금은 비겁한 이들에게 보내는 교사의 간절한 외침이기도 합니다.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닿은 표현은 ‘관계’입니다. 인간에게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 사랑받고 싶고 또 바르게 사랑하고 싶으니까요. 저자는 들어가는 말을 이렇게 엽니다. “무너진 신뢰 속에서 다시 관계를 짓는 편지.”목차는 그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교사는 먼저 아이 곁에 섭니다. 그리고 아이가 속한 가정에 관심을 둡니다. 저자 또한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3부에서는 잠시 멈추어 서서 관계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갇히길 거부합니다. 4부에서는 교실 밖에서 교실을 다시 들여다보며 시야를 넓힙니다. 이 모든 것이 훌륭한 교사의 자질입니다.그러나 그는 훌륭한 교사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부족한 모습 그대로 묵묵히 교실에 남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다시금 느끼지만, 교육이란 늘 콩나물 시루에 물 붓는 작업입니다. 대부분의 물은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교육은 그런 효율로 환산할 수 없는, 그래도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으로 물 붓기를 계속해 나가는 작업입니다.”(277쪽)기독교 사상가 시몬 베유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주의가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면, 그것은 기도와 같은 것이다.”“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주의는 기도다.”저자의 편지를 읽으며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교실뿐 아니라 우리는 모든 장소에서 타인과 관계합니다. 교실만 무너져 있을까요? 우리 사회 곳곳에, 우리가 속한 직장과 가정에도 무너진 곳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 속에서 깊이 무너지고 후회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하지만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신뢰가 무너진 곳에 다시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야 합니다. 관계를 살리는 길은 나를 비우고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내 전부를 다해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일 때, 타인은 조금씩 변합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달라집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배운 점입니다. 저는 여기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교실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저와 당신께, 그리고 인생이라는 학교를 다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