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커스아웃 보이 』, 정은
*서평단 도서제공 @moonji_books
❝늘••••••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강제로 와 있는 기분이야. 세상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은, 유령처럼. 거기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포커스아웃 보이와 싱크아웃 걸을 다룬 독특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주인공인 정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다. 사람들은 흐릿한 얼굴을 가진 정진을 종종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거나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 3 같은, 엑스트라 같은 존재인 정진. 얼굴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출석 체크가 누락되는 일이 일상이고, 그렇게 또 한 번 누락되어 자원봉사 시간을 다시 채우기 위해 간 도서관에서 정진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소리와 마주치고 난생 처음 타인과 두 눈을 맞춘다.
꿈과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진에게 부모가 삶의 목적이나 꿈이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꿈을 실현하는 것도 좋지만,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삶, 스스로와 잘 지내며 내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삶,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함께 먹는 삶을 실현하는 것으로도 때론 충분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 이르러서야 이 책의 작가님이 《산책을 듣는 시간》을 집필하신 작가님이라는 걸 알았다 ! 그러고 보니 두 책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다소 어긋나 있는 두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감정을 나누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작가님은 자신이 왜 이렇게 두 아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독자로서는 <산책을 듣는 시간>, <포커스아웃 보이> 같은 책들이 필요한 때가 분명 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때가,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는 시기가 있기에🙂
🔖영민이랑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영민이는 보곤 했다. 관심이 많으면 그만큼 세상에 많은 것이 존재했다. 관심이 없으면 있는 것도 없는 것이 된다. 그러니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맞고, 지금 내 눈앞에는 내가 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들만 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보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한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 친구 덕분에 내가 ‘본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p50-51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이 서로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각기 다른 80억 명의 낯선 사람이 있다는 사실부터 기적인데, 그 각각의 사람이 간혹 서로를 알아보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기적 중의 기적이겠지. 그게 기적이 아니라면, 원래 그렇게 되기로 정해진 것이겠지. 우연이 아니라면 필연이겠지. 어릴 때는 이런 내가 운이 없다고 생각했고, 조금 더 커서는 이렇게 태어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런데 유리 누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 이유를 꼭 몰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은 원래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니까. 먼미래가 이유를 알려줄 수도 있겠지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나는 그저 오늘을 살 뿐이다. 오늘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몰라도 괜찮았다. p80-81
🔖“나는 네가 편하고 재밌어. 너랑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해.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네 도움이 있어야만 내 삶이 완전해지는 건 아니야.
불완전하면 또 어때? 무수히 많이 늦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러니 갈수록 무엇이 옳은지 판단 내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삶을 아주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는 오늘의 실패가 실패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꼭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기보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 마음을 열고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싶어. 내 인생이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지금의 나는 모르니까. 그건 포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해. 나와 세상에 약간의 시차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시차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내 세계가 완전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p128-129
🔖“시간은 많아. 실패해도 되고.”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잖아.”
“그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지금 너에겐 낭비할 시간밖에 없어. 맘대로 써. 실패라고 또 실패해도 괜찮아.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찾아보고 또 찾아봐.”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