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상하고 천박하게 』, 김사월/이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떠나고 싶은데 죽을 용기는 나지 않아서 그냥 살았다. 삶은 기쁨보다 고통을 더 많이 수확하는 밭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삶은 최선과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슬아를 만났어. 살아 있음에서 오는 책임은 무겁지만 그래도 사는 게 좋아졌다. 머물고 싶어졌다. 이 울타리를 잘 지킬 수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달라질 줄 나도 몰랐다.
넌 누군가가 널 복잡하게 알아줄 때 눈물이 난다고 했지? 그 마음에 사무치게 동감해. 아니, 그냥 완전히 찬성한다. 나 역시 다면적인 내가 복잡하게 알아차려지는 순간을 지나치게 갈망하고 꿈꾸기에...
저는 종교는 없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제게 사랑 대신에 아픔을 주셔서 그걸 제가 노래하게끔 만들고 그걸 통해서 사랑을 얻으라고 아픔을 주신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스스로에게 좋은 걸 많이 먹이고 나를 거의 죽음으로 내모는 풍경 앞에도 나아가며 살자 친구야. 라디오도 가끔 듣고. 두려워하면서.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어떤 날은 눈물이 질질 나는 대로 흘러내리게 두면서.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뮤지션 김사월과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이훤이 1년간 주고받은 서간을 엮은, 열린책들 출판사의 ‘둘이서 시리즈’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장식한 책이다.
생각을 글로 옮겨적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서평을 쓰며 종종 느끼는데, 그래서인지 작가들에게 자주 경외심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콕 찝어서 글로 나타내기도 하고, 때론 나조차도 몰랐던 내 마음을 감쪽같이 하나의 문장 혹은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해내기도 하기에. <고상하고 천박하게> 역시 그랬다. 자연스럽게 교차되는 두 사람의 시선을 좇으며, 내밀한 속마음과 인간적인 고뇌가 담긴 그들의 이야기에 속절없이 빠져들어 읽었다. 특히 작가 둘이 식당과 카페에서 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꽤나 인상 깊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과 상대방 덕분에 무지했던 분야에 점차 매력을 느끼게 되는 사람, 주파수를 점차 맞춰가는 듯한 두 사람의 대화에 매료되었다. ‘그 자리에 나도 껴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솔함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온 글이었다. 이쯤에서 책 문장 하나를 인용하고 싶다. “혼자만 알고 있을 내밀한 자신을 책 곳곳에 바치고 나눠주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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