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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ji20936님의 서재
  • 영원에 빚을 져서
  • 예소연
  • 13,500원 (10%750)
  • 2025-01-25
  • : 11,34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루되는 일은 불가항력이지만 연루된 모든 존재를 놓치지 않고 톺아보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_p145 작가의 말 中


✍️동이는 대학교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혜란과 석을 처음 알게 된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동고동락하며 한 계절을 보낸 세 사람. 하지만 많은 관계가 그렇듯 그들 사이에도 조금씩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약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동이는 혜란으로부터  캄보디아에 홀로 여행을 간 석이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석이의 휴대폰에 기록된 마지막 위치는 프놈펜 국제공항. 나와 혜란은 석이가 해외봉사를 떠났을 적 바울학교의 학생이었던 삐썻을 만나러 캄보디아에 간 것이라고 확신하며 석이를 찾기 위해 캄보디아로 떠난다. 


타인을 향한 비뚤어진 마음, 서로를 향한 치졸한 의심, 결국엔 금이 가고야 마는 관계 같은 것들이 잘 드러난 소설이었다. 사소하기도, 때론 심각하기도 한 문제 때문에 서로 오해하고 어긋나지만 그렇게 멀어진 관계는 어떤 사건이 트리거가 되어 다시 회복되기도 한다. 복잡미묘한 인간관계를 정확히 꼬집으면서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상실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 좋았다. 예기치 못한 참사와 어쩌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참사, 그리고 인간에 의해 자행된 극악무도한 학살에 대해서도. 


동이와 혜란, 써삣 셋이서 사람이 되는 게임을 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삐썻이 석이와 자주 했던 게임이라며 동이와 혜란에게 사람이 되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 게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말하는 게임인데, 게임 도중 석이가 되는 게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고 그러면서 동이는 깨닫는다. 석이가 ‘우리가 아닌 사람’임을. 스스로 석이를 자꾸 우리라는 이름에 가두려고 했음을 말이다. 우리는 애석하게도 타인의 일면만을 보고 그 사람 전체를 안다는 듯 판단하는 실수를 빈번히 저지른다. 석이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동이와 혜란은 스스로를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석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수많은 장애물들을 통과해 종국에는 관성적인 ‘나’에게서 벗어나 자신이 만든 한계를 깨부순 동이와 혜란을 보며, 누군가에게 빚진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마음에 감사해할 줄 아는 건 정말 용기있고 멋진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미완이기에 온전한 사람들이다.' 라고 말해주는 이 소설이 참 좋다.


🔖혜란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속으로 석이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맞아,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우리조차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사건을 캄보디아 사람이, 하필 그런 식으로 부려놓는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는 침묵이 이어졌고 먼저 삐썻이 침묵을 깼다. “벙도 그렇게 죽을 수 있어요. 어떤 죽은은 그런 식이기도 해요. 다를 게 없어요.” _p58-59


🔖“마음이야? 통증이야?” 엄마는 내게 그때그때 간신히 대답했다. 이건 마음, 이건 통증. 그제야 내가 아픈 엄마에게 참 웃기는 질문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과 통증은 어떤 관점에서 동일한 맥락이다. 나는 그걸 한 번도 살핀 적이 없었다. 결국 나와 혜란의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석이의 마음과 고통을 함부로 가늠하려고 했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이해하는 것과 가늠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_p65


🔖상실은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수많은 상실을 겪은 채 슬퍼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거고 그것은 나와 관계 맺은 이들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엄마를 잃음으로써 내가 상실을 겪었듯, 누군가도 나를 잃음으로써 상실을 겪을 것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상실의 늪 속에서 깊은 슬픔과 처절한 슬픔, 가벼운 슬픔과 어찌할 수 없는 슬픔들에 둘러싸여 종국에는 축축한 비애에 목을 축이며 살아가게 되겠지. _p113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 사람들, 그래서 좋든 싫든 나의 일부가 된 이들은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어떤 관계들은 “나를 망가뜨릴 수 있는 문제”(12p)가 된다. 어쩌면 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ㅡ이것이 이해와 공감에, 그리고 애도에 필요한 일일 것이다.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화자가 여러 번 놀라고,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판단을 번복하고 후회하는 이유는, 그가 특별히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사라진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변하는 것을 감내할 만큼 용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_p136-137 작품해설 


*서평단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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