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일이 아닐까❞
다채로운 이야기로 독자들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sf 앤솔로지 sf보다. 세 번째 테마는 ‘빛’이다. 이번 단편집은 전작인 얼음과 벽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과학적 지식을 요하는 단편들로 인해 개인적으로 쉽게 읽히진 않았지만, 신선한 플롯 덕에 새로운 느낌을 가장 많이 받기도 했다.
✨️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 단요,「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당연히 보야야 할 빛은 보지 못하는, 대개는 보지 못하는 빛을 보는 족속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종교역사학 연구자인 친구와 송전망 관리 기술자인 ‘나’의 대화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술이 곰팡이처럼 난무하는, 음침하고 평화로운 31세기. 마지막 남극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냉동된 원시인이 발견된다. 원시인의 유전자를 복원하자 감광성 신경절 세포가 돌연변이임이 밝혀지는데, 그가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에 반응하는 눈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과거 어떤 이들은 열화상 카메라처럼, 색상이나 음영이 아닌 온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대상을 구분했으리라는 가설이 제기된다.
예수가 단지 돌연변이 인간이었다면? 굉장히 파격적이고 발칙하게 느껴지는 소재다. 누군가는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으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 서이제,「굴절과 반사」
지상에서의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해저 도시 생활을 하게 된 인류. 주인공은 교도소의 수감자를 심해로 내려보내 독방에 가두는 일을 한다. 시공 당시 안전성 논란이 있었던 교도소와는 달리 최고의 기술력으로 시공되었다던 해저터널이 무너져버리면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너'는 5년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과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주인공은 한 아이로부터 ‘너’가 인화된 사진과 ‘너’가 보낸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지상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고, 자신은 5년 전 사고 때 물살에 휩쓸려 육지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해저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브로커를 따라 지상으로 올라오라는 말과 함께. 극소수의 연구자에게만 해수면 밖으로 나는 것이 허용되어 있는 세상에서, ‘나’는 지상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이밖에도 ‘빛’을 소재로 상상력 가득한 세계를 보여준 작품들
〰️생체리듬을 무시한 채 수많은 전자 빛에 노출되면서 정작 제대로 된 햇빛은 쬐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을 다룬 _이희영, 「시계탑」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항성계를 배경으로, 영화감독 라블레윤과 그의 작품을 다룬 _서윤빈,「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소고」
〰️법정 밖에서 분쟁을 해결해주는 인공지능 볍률 서비스 기업을 소재로 하여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이점과 우리가 여전히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들을 제시하는 _장강명,「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
〰️변광성 SN 2024B (일명 ‘등대’) 기 자신들을 구원할 빛이라 여기며 등대로의 여정을 시작한 인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정녕 구원의 빛이 맞을까? _위래,「춘우삭래春雨數來」
🔖신은 빛을 창조했지만, 빛은 세계를 창조한다. 빛은 우리를 보게 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세계는 존재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우주는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만큼만 확장된다. _p.7
🔖빛은 인간을 위한 안배가 아니다. 누구에게서 기원했든, 이런 작품에서 빛은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조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_p.196-197
💌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