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울림, 오래 남다
네루다 2009/11/0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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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
- 도법.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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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2009-10-15
: 564
처음에는 좌담인줄 알았어요.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 문학과 종교에서 일가를 이룬 두 동갑내기가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무척 궁금했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좌담이 아니더라고요. 한 주제에 대해 같은 자리에서 주거니받거니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는 좌담의 형태가 아니라서 사알짝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데서는 듣기 힘든 두 분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을 수 있어 무척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시인과 스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문학과 생각과 세계관을 주욱 펼쳐놓고 있어요. 사실 두 분은 간접적으로만 접할 수밖에 없었지요. 김용택 시인은 시와 글로, 도법 스님은 실상사를 둘러싼 귀농생태환경의 뉴스들로만 보았답니다.
이 책을 보면 김용택 시인이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지, 도법 스님이 어떻게 출가를 하고 종교와 삶을 일치시키는 참불교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답니다. 마치 따뜻한 아랫목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조곤조곤 이야기나누는 기분이었어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산사에서 듣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결코 진부하거나 낡은 것이 아니라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어요. 김용택 시인은 태어나고 자란 진메마을에서 평생을 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시인으로 만든 것이 '자연'이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서로 돕고 함께 누리던 아름다운 시골공동체, 자연을 경외하고 거스르지 않으며 지혜롭게 살던 마을공동체의 파괴와 변화를 바라보는 시인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스님의 삶은 또 어떻고요. 어린 시절 불심이 깊었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불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삶이자 운명이라고 받아들였고, 어린 나이에 출가해 진리와 참을 알기 위해 고민했던 시절, 10년 동안 참선에 들었다가 결국 깨달은 것은 '종교와 삶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불교가 대중의 삶에서 저 높은 곳에 떨어져 있는 작금의 실태를 안타까워하며 민중의 삶에 뿌리내린 불교, 가난과 자비를 실천했던 부처의 참살이를 따르는 불교, 권위와 권력을 내세우지 않는 불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지요. 조계종 폭력사태를 참담한 마음으로 반성하며, 생명과 평화를 위한 진짜 불교를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추는 스님의 삶은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두 분의 삶, 두 분이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모아지지요. 그것은 곧 생명, 사랑, 평화, 자연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존엄을 지키고,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파괴하는 이 파괴적인 개발을 막고, 신음하며 피흘리는 자연을 어루만져주는 것. 그것이 두 분이 평생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자 실천인 것이지요. 시인은 시로, 스님은 종교로. 두 분에게 시와 불교는, 직업을 뛰어넘어 자신의 존재를 치열하게 내건 싸움이자 사랑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위로 받는 느낌이었어요. 등을 따뜻하게 쓸어주는 손길, 괜찮다 다 괜찮다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느꼈답니다.
삶이 곧 교훈이 되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요. 제아무리 유명한 인물, 정치인, 기업가라 해도 누군가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기는 힘들 거예요. 그런 면에서 두 분의 삶은 길고 긴 여운을 남깁니다. 조금 더 낮추고 조금 더 버리고 조금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구나, 해치지 않고 파괴하지 않고 조심조심 살아야겠구나. 모든 것들을 존중하며 평화로이 살아야겠구나. 다시 한 번 다짐해봅니다. 비록 다짐일뿐이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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