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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슴도치의 거리만큼” 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고슴도치끼리는 가까울수록
상처가 생기기 때문에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말 그대로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처 주거나 상처받기 쉽다.
주인공 안셀과 동생은
어릴 때부터 폭력 가정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겪으며 살았다.
엄마 역시 폭력 가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한 아이들을 불안전한 세상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하는 선택은 안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게 된다.
안셀의 기억에는 없지만
아빠는 폭력을, 희미한 기억의 엄마에게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상처만이 존재하는 세상과 우주는 더 이상
‘선’이 될 수 없으며,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로 ‘악’만이 남아 확신을 거듭하고 거듭한다.
한편, 유일하게 ‘선’이 되고
싶어했던 가족도 있다.
어릴 때 입양되어 간
남동생 ‘아기 패커’ 가족.
불행히도 아기 패커는
사망했지만, 그의 아내와 딸이 운영하는 블루하우스라는 식당에 들어서며 안정감을 찾는다. 그 곳에서는 남동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하지만 가족의 결핍이
채워지기도 전에,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블루하우스에서 쫓겨난다.
“돌아오지 말아요. 그들은
말했다. 더 이상 여기에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살면서
그런 말은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해리슨 가족이 하는 말은 다르게 느껴졌다. 블루하우스는 그간 당신을 밝고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으며, 많은 것을
증명했다. 마침내 당신은 무언가의 일부가 되었다. 가족.”(p.345)
만약 부모님이 옆에 계셨다면, 안셀의 삶은 달라졌을까?
안셀은 안셀이 존재하는
현실 외에 수천개의 평행 우주가 존재한다는 ‘다중 우주’의
이론을 믿는데, 사실 안셀의 마음이 많이 담겨있어서 안쓰러운 부분이기도 했다. 안셀이 우주 이론을 믿을수록 현실과 괴리가 컸을 뿐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연쇄 살인마 안셀 패커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른 우주가 있다고 믿는다. 그곳에는 다른 모습의 당신이 있다. 버림받지 않은 아이.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있는 아이. 엄마는 자기
전에 책을 읽어 주고 잘 자라며 뽀뽀를 해 준다. 사피 싱의 침대에 여우를 가져다 두지 않아도 아기
패커의 비명 소리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배운 당신도 있다. … 살면서 다들 한 번쯤 일어버리는 것만
잃어버리는 당신이 있다.”(p.148)
사실 읽으며 자꾸 시선이
갔던 부분은 ‘아동 학대’와 유년 시설의 ‘환경’이었다.
그로 인해 결핍된 부분을
비정상적으로 찾아가는 안셀의 서사로 읽다가 점차 사후에도 등장하는, 살아보지 않았던 삶을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서사로 시선이 분산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안셀과 연관된 사람들을
통해 직장내 성차별과 아동학대. 그리고 정작 피해자는 없고 가해자인 안셀에 집중된 언론의 시선에 불편함도
느끼게 하는 이 책은 다양한 사유를 선사한다.
“모레티가 항상 뭐라고 말했던가?
법 집행기관에서 여성 비율은 10% 미만이야. 희생
없인 성공할 수 없어. 사피는 굴욕감을 느끼며 경찰서를 나섰다.”(p.198)
“시신을 발견한 지 20년이
되었다. 실종된 지는 29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방송국 카메라가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심산이었다. 못마땅했다. … 이 여자애들만으로는 이야기랄 게 없다. 어떤 집회도,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안셀과 이 세상이 안셀과 같은 남자에게 보이는 열광 때문이다.”(p.401)
해당
후기는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