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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는 처음인데,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를 읽으면서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가 더해져서 편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SF처럼 반전이 있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아니라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만, 판타지 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았던 독자로서는 흥미로운 부분이 꽤 있었다. 그리고 흥미의 요소 뒤에는 생각하는 부분이 많아서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된다.

 

내가 발 딛고 사는 현실 외에 다른 공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다른 공간을 ‘레이어’라고 표현하여 레이어드 시키거나 옮기는 행위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딜리팅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일부 내용은 흥미로 다가왔다.

 

“세상은 네 개의 레이어로 만들어져 있대요. 가장 아래쪽 레이어는 지구 표면이에요. 우리가 딛고 있는 땅, 그게 배경으로 깔려 있고, 그 위의 레이어에는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살고 있어요, 바로 그 위에 숨겨진 레이어가 있어요.”(p.63)

 

“제가 어릴 때부터 마이너스의 손으로 유명했어요. 뭘 만지면 전부 사라지고, 깨지고, 고장나고...... 그거야말로 타고난 거죠. 모든 걸 망가뜨리는 사람. 새걸로 바꾸고 싶은데 절대 고장 나지 않는 가전제품 있으면 하나 줘보세요. 바로 신제품을 살 수 있게 해드릴게요.”(p.66)

 

딜리터란 “말려 있던 숨은 레이어로 현실의 물건을 이동시키는 사람”(p.73)이다.

 

우리가 아는 마술의 특징이라면 비둘기가 사라지고, 사라진 비둘기가 다시 나타나는 모습이 있다. 눈앞에 사라지지만 트릭이라는 속임수라고 생각하며 믿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진짜 사라지게 하는 사람이 있고, 사라진 곳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사라진 공간은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현실의 죽음과 다르며, 쪽지를 남기고 사라진 하윤에 대한 시선은 둘로 나뉜다. 먼 곳에서 새 삶을 살고 싶다는 쪽지의 내용과, ‘실종’으로 바라보며 나쁜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지인들의 의견에 강치우는 한마디 한다.

 

“나쁜 선택이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에요. 좋고 나쁨의 기준이란 건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좋고 나쁜 것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고, 그냥 절박하니까 고르게 되는 거죠. 눈에 보이는 걸 급하게.”(p.17)

-그렇다면 나는 딜리팅을 고를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레이어는 하윤의 결정대로 도피처가 될 수 있지만, 다시 내 의지로 나올 수 없다. 왜냐면 평화롭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만큼 지내기 좋기 때문에 서서히 현실에서의 시간은 잊혀져 간다. 생각이 멈춘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나라면 무엇을 사라지게 하고 싶은가.

하나를 떠올리려는 순간! 지금은 해결된 상태임을 알았다. 어쩌면 간절한 마음에 이미 레이어 속으로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에요, 미안해요. 거짓말이에요.

 

내가 딜리터라면?

객관적인 정보에 의한 판단과, 무엇보다 본인의 간절함이 있어야 가능하다. 의뢰인의 사생활은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나는 의뢰에 응할 것 같다. 때로는 어떤 것이 사라짐으로써 쌓아놨던 힘든 감정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해방감은 또 다른 행복으로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레이어가 있다면 지금과 같은 삶을 살 것인가?

많은 곳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하고 있는 요즘, 레이어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쉼터이자, 여유가 있는 공간이 있다면 지금의 삶을 유지하면서 드나드는 정도로 사용하고 싶다.

 

 

 

“‘As above, so below.’(위에서 그러하듯이, 아래에서도)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에 영향을 미치고,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마주친다.”(p.52)

 

 

 

 

 

 

 

 

 

 

 

 

해당 후기는 자이언트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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