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로마나가 제국 전역에 미쳤던 시대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해도 문제가 없었다. 사람들은 건강하고 영양 상태도 좋고, 여행길에 들르는 시설의 위생 상태도 좋고, 목욕을 좋아하는 로마인들답게전염병의 발생과 유행을 상당히 억제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3세기 후반에 접어든 뒤에는 침입한 야만족을 피해 도망치는 피난민이 사람의 물결을 이루었다. 또한 모든 면에서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프라의 유지와 보수에도 손이 미치지 않는다. 로마제국에서는 후기로 갈수록 전염병 유행이 잦아지는데, 그것은 전란으로 피난민이 발생했고, 게다가 갈수록 피난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P319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죽음과 프로부스 황제의 죽음은 이 시기에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의 거리가 한도를 넘어 지나치게 단축되었음을 보여준다. 군인 출신 황제들은 말하자면 실력 중시 정책의 성과였다. 태생도 성장 배경도 비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그들이 제위에까지오를 수 있었던 것은 기득권층에 절망한 사람들이 실력있는 자의 등장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력 중시 노선이 정당한 것은 분명하지만, 세상 만사가 다그렇듯이 장점이 있으면 결점도 있게 마련이다. 실력주의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동격이었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나한테 명령을 내리는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사려 분별이 요구되지만, 그런 합리적 정신을 가진 사람은 별로없다. 태생도 성장 배경도 자기와는 동떨어진 이른바 ‘귀골‘에게 하층민들이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비합리‘ 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가슴에 더 순순히 들어오는 것은 합리적인 이성보다 비합리적인 감성이다.- P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