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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님의 서재
  • 전라디언의 굴레
  • 조귀동
  • 15,300원 (10%850)
  • 2021-12-10
  • : 1,358

책의 제목이 자못 자극적이다. 적나라하기까지 하다. 전라도 문제...이 시대적 과제를 어찌할 것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국가적 차원의 숙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호남지역 출신이 아니다. 중부지방인 경기도가 고향이니까. 물론 조상대로 올라가면 지방에 연고를 둔 분도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적으로 나는 영남과 호남이 가치적으로 차별화되지 않는다.

 

나는 선거권을 가진 이례로 김대중씨가 출마할 때마다 그에게 표를 찍었다. 그가 토론회를 하거나 연설을 한다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서 들은 적도 있다. 내가 DJ를 지지한 이유는 간단하지만 절실하기도 했다. 호남의 한...박정희와 전두환이 차별했다는 호남...DJ가 집권해서 해소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DJ의 주장대로 혹은 호남인들의 주장대로 과거 정권들이 호남을 차별했다니 DJ가 권력을 쥐고 균형을 좀 맞추라는 뜻이 담겼던 것이다.

 

권력 좀 잡았다고 호남이 다 해먹지 말고 DJ가 수십년 주장하던대로 균형인사를 하라는 취지였다. 과연 그렇게 됐는가? 5년 권력 좀 잡았다고 마치 한풀이하듯이 독식한 점은 없는가? 어느 공공기관의 이야기다. DJ가 집권하니까 인사 라인이 전부 호남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부 승진의 최고 자리인 넘버투맨이 호남출신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느닷없이 호남이 연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수 등장했다는 것이다.

 

결국 DJ의 순수한 뜻과는 거리가 멀게, 과거 TK들이 한 것처럼 똑같은 행태를 호남정권도 답습했던 것이다. 보수정권의 무원칙한 차별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우대받는 지역이 달라졌을뿐 본질은 같았다는 것이다. 5.18 문제...최대의 피해자는 DJ였다. 사실 5.18은 그 자체가 전두환 군사정권이 DJ를 연행함에 따라 이에 항거하는 뜻에서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5.18을 4.19 수준의 항거운동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엄밀히 말해서 지역맹주인 DJ를 구하고자 하는 호남인들의 전두환 군부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 가치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문제는 5.18이 여전히 국민과 시대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진상규명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5.18이 발발한지 40년이 넘었다. 그 사이에 피해당사자인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나라를 5년간 좌지우지했다. 군부와 정보라인을 다 장악했었다.

 

그런데 왜 여전히 5.18 진상규명 문제가 나오는가? 호남의 한을 한몸에 지고 절대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이라는 인물은, 왜 호남인들이 지금까지 한으로 생각하는 5.18 문제를 시원하게 정리하지 못했는가? 당시 DJ는 춘향이의 한은 변사또의 목을 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함으로써 풀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딱히 전두환이나 노태우에 대해 이렇다할 조치가 없었다. 사실 그 전정권에서 두 사람을 법정에 세운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나는 호남인들도 그런 기조에 있는줄 알았다. DJ가 집권하고 대통령이 됨으로서 호남의 한, 5.18 문제를 그 수준에서 정리하는데 호남인들이 동의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건 착각이었다. 만일 호남의 절대적 지지 속에서 4수 끝에 대통령이 된 DJ가 5.18 문제와 관련하여 여전히 숙제를 남겼다면 그건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자신을 지지해준 호남민심에 대한 무책임한 배반 아니겠는가.

 

DJ 집권시만해도 5.18 관련자(피해자/가해자/목격자 등)들 상당수가 생존했었다. 자료 접근도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그걸 충분히 해결하지 못하고 DJ가 대통령에서 물러난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숙제를 남겼다는 점은 참으로 아쉽다. 지역문제는 여전히 첨예하다. 지역감정을 과연 박정희가 처음으로 조장하고 이용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과거 일제시대에 만주에 징용으로 끌려간 분들도 영호남 출신들 간에 알력이 있었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남의 나라에 정복되어 주먹밥 세덩이로 하루하루 연명하면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던 그런 상황에서도 영남과 호남의 반목과 갈등은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게 1930~40년대 이야기다. 박정희 집권 훨씬 이전임은 물론이다. 지금도 특정지역에서는 특정정당에 대한 지지표가 95%이상 나온다. 우리 정치는 언제까지 이런 지역구도에 함몰되어 있어야 한단 말인가? 호남사람들은 언제까지 피해자 혹은 ‘피해의식을 가진 국민’으로 남아야 하는 것인가?

 

이 책의 제목, 전라디언의 굴레...그건 과연 다른 지역사람들이 만들어 호남사람들을 묶어 놓은 것인가? 아니면 호남에 적을 둔 국민들이 스스로 굴레를 만들어 씌운 것인가. 처음에는 남들이 만들었으나 혹시 오늘날에는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올해도 저물어 간다. 우리 국민들은 언제까지 5.18 그리고 호남의 업보를 등에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것일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문제가 풀리는 것일까? 모든 것을 ‘호남분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면 되는 것일까? 그게 과연 바른 방향일까?

 

나는 답을 모른다. 다만 5.18 당시를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호남정권이 들어서도, 40년이 지나가도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로 여전히 온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이 현실이 답답해서 이런 넋두리라도 몇줄 적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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