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놀이방과 유치원을 다녔던 시절. 나에겐 그곳들에 대한 기억이 크게 남아있지 않다. 친구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정도만 남아있고, 놀이방과 유치원이라는 장소는 나에게 큰 인상을 주진 못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달랐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학교라는 장소가 여태까지와는 다른 웅장함을 주었고 끝없이 이어지는 기다란 복도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전학 전까지 다녔던 초등학교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역사에 비례해 소문이 많았고, 소문이 많아질수록 학교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화장실 네 번째 칸 귀신,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나무 사이의 구멍 등 여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그 자체로 고유한 소문. 말 그대로 ‘학교는 언제나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신기하게도 대학교에 가서는 미스터리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소문은 더욱 구체적인 형태를 갖췄다. 우리가 커가듯 소문도 성장하는 건지 고등학생 때는 소문(한국지리 교실 책상 3번째 줄에 앉아 있는 파란색 인간)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도 등장했다. 이 책의 ‘면학실’과 같은 공간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도 있었고 그곳(학습실)까지 가는 길목에 한국지리실과 (가끔 귀신이 나온다는)복도가 있었다. 학교와 학구열과 경쟁과 미스테리는 어쩌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의 주인공인 준영은 면학실(각 학년의 5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에 소속된 이른바 우등생이지만, 일반적인 고등학교 3학년이 입시에 힘쓸 시기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의식주와 생존. 준영은 돌아갈 집이 없다. 아버지의 실종(그러나 죽음에 가까운)으로 인해 돌아갈 곳을 잃은 준영은 학교를 ‘집’으로 만들기로 한다. 자율 학습을 끝낸 아이들이 집에 돌아갈 때 준영은 그렇게 ‘두 번째 등교’를 시작한다. 준영이 학교에서 의식주를 해결함과 동시에 ‘책 도둑’, ‘버려진 아이’ 소문이 등장한다. 심지어는 소문에 힘을 실어주듯 물건이 조금씩 사라지기도 한다. 준영은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은 자신과 달리 범죄의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중인 존재가 있음을 확신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의 고3은 입시와 마주한다. 준영도 피할 수 없는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시간. “준영이 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데?”라는 교사의 말에 준영은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런 준영에게 담임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몰라도 돼 그건. 나도 아직 모르거든.” 우리는 뭐가 되고 싶냐는 말에 보통 장래희망으로 대답한다. 내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나는 하고 싶은 직업이 뚜렷하게 있었고 그 직업을 위한 전공까지 중학생 때부터 정해놓았다. 다들 나보고 부럽다고 했다. ‘목표 의식이 뚜렷해서 좋겠다.’, ‘너와 그 직업은 잘 어울릴 거다.’라며 격려해주는 사람이 대다수였고, 그런 주변의 응원에 나는 내 진로에 조금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진로가 특정 직업이 아니라는 걸 빨리 알았더라면, 나도 준영의 담임교사도 ‘되고 싶은 나’에 대해 여전히 고민 중이었을까?
다시 책으로 넘어오면, 준영의 주변에는 고유한 사연을 가진 주변인들이 존재한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극적인 스토리를 얻으려는 학생회장 신지혜, 집을 나오고 싶어하는 안소미, 대학 진학에 큰 목표의식이 없는 두홍, 마지막으로 진짜 ‘책 도둑’까지. 사연없는 인물이 없다. 입시와 고3이라는 큰 바운더리로 묶여 각자의 사연은 감춰지기 마련이지만, 이 책의 인물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열아홉 나에게도 나름의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었지만 고3이란 성질에 묻히곤 했다. 개개인의 이야기가 입시에 묻히지 않고 잘 드러났기 때문인지, 책을 읽으며 그 시절 나와도 뒤늦은 해후를 했다.
‘언제까지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다고. 내가 어디서 나고 자라 어떤 가족이 있고, 무슨 실패를 겪었든 계속해서 뛰쳐나가다 보면 비로소 자신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서야 우리는 제대로 된 방향을 정할 수 있다.’ _242쪽
나는 이제 잠시 길을 잃더라도 괜찮다. 내게는 돌아올 곳과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과의 추억이 내 영화고, 이정표다. _257쪽
가짜 책 도둑인 준영이 친구들과 힘을 합쳐 진짜 책 도둑을 찾는 여러 사건이 긴밀하게 얽혀 있고, 각 과정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치유한다. 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기꺼이 펼쳐보면 좋겠다. 성장소설이 주는 감동은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과거의 나에게로 이동한다.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오래 전 지나친 자신의 과거를 보듬어주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창비 스위치 <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 서평단 선정으로 인해 책을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