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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님의 서재
  •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 이희영
  • 11,700원 (10%650)
  • 2023-09-22
  • : 8,858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에 왔다. 일주일의 시간을 가족들과 보내며 특별히 한 것은 없다. 그러다 문득, 가족들과 보내는 이 시간 자체가 그 이상으로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를 읽으며 더더욱.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지나간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고등학생인 선우혁과 그의 친구 강도운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장면에서 나 또한 남일같지 않았다. 친구 사이에서도 내가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은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고, 관계란 그렇게 서로의 이면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마냥 웃을 수 없던 부분은 강도운의 왕따 경험이었다. 도운은 왕따를 당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선우혁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위해 이곳에선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덕분에 도깨비바늘이라는 별명이 생긴다. 그러나 눈치가 부족했던 도운은 자신에게 이성적 호감을 갖고 다가오는 주희의 마음을 모르고, 그에게도 똑같이 친절하게 대해 오해를 사고 만다. 결과적으로 도운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이댄다는 소문이 퍼지며 그에게는 머리가 셋 달린 괴물, 케로베로스라는 별명이 붙는다.


별명은 보통 타인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나 행동으로 인해 사람마다 나를 이해하는 범위가 다르다. 친구 A가 나를 B라는 별명으로 불렀을 때, 또다른 친구 C는 이 별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고등학생 때 별명이 여럿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다중이', '오덕'이었다. 왜 오덕이냐고 묻는 친구와 다중이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친구가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보여준 이미지가 달랐기 때문이겠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의 도운이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두에게 친절한 것만이 정답이라고 여긴 것은 슬프지만 공감됐다. 도운이 모두에게 친절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별명은 치명적일 수 있다. 별명은 그 사람의 일부분일 뿐 전체가 아니다. 별명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강도운이 자신의 과거를 선우혁에게 말하며 혁이 도운의 새로운 면을 보았듯, 앞으로 그들이 서로의 여러가지 모습을 발견하며 나아가길 기대한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가족의 부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선우혁은 13살 터울의 형이 있고, 불의의 사고로 5살 때 그 형을 잃는다. 고1이 된 선우혁이 죽은 형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며 형이란 퍼즐을 맞춰나간다. 책에 간간히 나오는 선우진(혁의 형)이 선우혁에게 보이는 태도는 참 따스했다. 아기 대하듯 때론 친구 대하듯 하는 그 모습에 진이 살아 있었다면 정말 좋은 형이 되었겠다는 생각, 나 또한 8살 터울의 내 동생에게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지금이야 말로 어느 때보다 성실하게 말이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오랜 시간을 건너온 화해를 다룬다. 귤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해송은 진의 죽음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며 귤을 싫어하게 된다. 해송이 귤이 먹고 싶다고 지나가듯 한 말에 선우진은 해송에게 귤을 전해주러 밤 중에 나가고, 그 길에 사고를 당한다. 가장 좋아했던 것이 가장 소중했던 것을 잃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다 부정하고 싶어진다. 선우진의 동생인 선우혁이 마지막에 해송에게 귤을 건네는 장면은 13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서 해송을 치유한다. 선우진과 똑닮은 선우혁이 형의 죽음은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더이상은 그 죄책감을 안고 가지 않기를 바라며 건넨 그 귤이 해송이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를 바란다.


#여름의귤을좋아하세요 #이희영 #창비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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