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희 청소기> 서평
모두의행복 2023/07/0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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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희 청소기
- 김보라
- 13,500원 (10%↓
750) - 2023-06-29
: 582
내가 초등학생 때 가장 기다리던 시간은 방학이었다. 아쉬운 건 학교에 가면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들과도 방학이 되면 만날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그럴 땐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안녕하세요. OO이 있나요?"로 시작하는 인삿말과 함께 어느 아파트 놀이터에서 몇 시에 만날 건지 정하면 된다. 그마저도 귀찮을 땐 아이들이 주로 모이는 놀이터에 그냥 가보면 적어도 한 명은 그곳에서 마주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그러나 3~4학년쯤 되자 하나 둘씩 폴더나 슬라이드 폰을 가졌음에도 집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방학을 가장 기다렸던 이유도 매일 학교에서만 보던 아이들과 학교가 아닌 장소에서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웃고 떠들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조용희 청소기>의 첫 장면은 방학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용희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장면에 등장하는 아이들 모두 친구들과 모여 있거나 어디를 갈지 의논하고 있는 반면, 용희는 어딘가로 홀로 뛰어가고 있다. 누가 용희인지 확실하게 눈에 띈다. 용희의 양옆으론 '방학 특강 접수, 내신완성반 접수, 영어집중반 모집, 수학집중반 모집'을 홍보하는 어른들과 홍보물이 있다. 지방 소도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시골에 가까웠던 지역)에 살았던 내 기억엔 여름이나 겨울방학식 때 교문 앞에서 솜사탕이나 풍선, 병아리, 달고나, 뽑기 등을 팔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신완성반이나 방학 특강 등에 대한 홍보 따윈 없었다. 방학 특강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텔레비전에서 봐야 했던 EBS 방학특강만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용희에게 '내신'이라는 말을 적어도 중학교 때나 가야 접할 수 있는 말인데, 초등학생들에게 학업이 주는 스트레스와 부담이 용희나 다른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과 대비되어 씁쓸함을 안겨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용희의 방학 계획표는 하루의 3 분의 1이 자는 시간이다. 용희와는 반대로 나는 방학 계획표를 세우면 초등학생에겐 비정상적으로 이른 시간인 6시에 일어난다고 계획을 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실한 방학을 보내고 싶다고 6시에 기상한다고 세웠던 계획을 한 번도 지킨 적은 없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너무 어른처럼 성실하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 땐 몰랐다.
<조용희 청소기>에는 '조용'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소리가 많이 등장하는데, 작가님이 소리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다.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부터,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 밥이 지어지는 소리, 오토바이나 자동차 엔진 소리, 매미가 우는 소리 등 용희가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책은 이 각각의 소리들에 대한 용희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다. 강아지가 내는 소리는 둥글고 부드러운 글씨체로 표현하여 용희의 강아지가 마치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용희네 강아지는 순한 기질일 것이라는 짐작까지 하게 한다. 밥이 지어지는 소리는 거칠고 날카롭게 긴 글씨체를 활용하여 치키치키 칙칙거리며 밥이 지어지는 소리와 고소한 향까지 생생한 느낌을 준다.
용희의 방학 목표인 늦잠자기는 이런 다양한 소리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창의력이 풍부한(그림을 보면 상도 받은) 용희는 아이디어를 내서 조용희 청소기를 만든다. 조용희 청소기는 주변의 소리를 흡수해서 조용히 만들어주는 용희만의 발평품이다. 용희는 늦잠자기를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주변 소리를 빨아들이고 소원대로 늦잠자기에 성공한다. (나는 지금도 종종 잠을 깨우는 주변 소음이 사라져서 푹 잘 수 있는 나날을 바라기도 한다.) 잠에서 깬 용희는 강아지가 내는 소리, 세탁기에서 나는 소리 등을 듣지 못한다. 조용희 청소기가 소리를 빨아들인 탓! 용희는 조용희 청소기의 커다란 (풍선처럼 생긴)주머니를 분리하고 세상에 여러 소리들을 돌려준다. 늦잠을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이 가진 소리들을 통해 경험을 키워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걸 용희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조용희 청소기>는 귀엽고 따뜻한 그림과 아이다운 이야기를 통해 어릴 적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포근한 그림책이다. 한편으론 아이가 아이답게 뛰어 놀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모습들, 예를 들면 방학에도 공부나 사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다. 늦잠을 자고 싶다는 마음, 주변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용희의 마음이 십분 이해됐다. 방학이라는 시간이 학기 중에는 아이들이 하지 못했던 여러 경험들을 이뤄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길 다시 한 번 바라본다.
※ 이 글은 창비 출판사의 <조용희 청소기>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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