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목이 안 돌아갈 정도로 높다란 옷깃을 달고 외국에서 돌아온 겐조는 이런 비참한 처지에 놓인 제 처자식을 잠자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이칼라인 그는 이러한 아이러니 때문에 심히 좌절했다. 그의 입술은 쓴웃음을 지을 용기조차 없었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164
하이칼라가 되어 귀국한 겐조가 다시 찾은 고향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겐조에게 사랑을 줬어야 할 그들은 겐조가 돌아오자 겐조에게 사랑을 베풀기보단 겐조의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 임신하여 불안한 아내, 아픈 누나와 위태로운 형, 곤경에 처한 장인, 그리고 다시 찾아온 양부모. 그들과 만나며 겐조는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생각한다.
원래 책을 읽기 전 제목의 뜻을 생각해 보기 좋아하는 나는 글을 읽기 전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으나 좀처럼 쉽게 그 의미를 떠올릴 수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이 궁금증은 책 말미에 서은혜 전주대학교 인문대학 일본언어 문화학과 교수님이 쓰신 해설로 해결되었다.
원작의 제목은 '도초(塗草)'다. 일본에 있는 말 중에는 '(말이 목적지를 향해 가다 말고) 길가의 풀을 뜯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의미는 '목적을 잊고 딴짓을 하다', '해찰하다' 등이다. 따라서 한눈팔기는 겐조가 길가의 풀을 만나 해찰하는 것을 의미하는 제목인 것이다. 위의 인물들은 겐조에게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귀국한 그가 양부 시마다를 만나며 시작된다. 양부의 등장으로 그는 자연스레 과거와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의 과거는 참으로 쓸쓸했다. 어디서나 겐조를 인간으로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자식이 여럿 있는 생부의 입장에서는 겐조가 그다지 쓸모 있는 인간이 아니었고, 양부의 눈에는 그저 자신의 노후를 위한 보험일 뿐이었다.
겐조는 바다에 살 수 없었다. 산에도 있을 자리가 없었다. 양쪽에서 내밀리며 그 사이에서 쭈뼛쭈뼛하고 있었다. 동시에 바다 것을 먹고, 때로는 산의 것에도 손을 내밀었다.
생부의 눈에도 양부의 눈에도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차라리 물건이었다. 단지 생부가 그를 잡동사니 취급하는 데 비해, 양부에겐 조만간 무언가 도움을 받아야지, 하는 속셈이 있을 따름이었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258
늘 겐조를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겐조가 귀국한 후에도 이어져 겐조에게는 금전적 도움을 바라는 이들만이 곁에 있을 뿐이었다. 늘 돈을 바라고, 돈이 성공의 척도라 여기고, 또 돈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돈과 성공,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는 부자가 될 것인지 위대해질 것인지,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어중간한 자신을 확실히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부자가 된다는 것은 얼간이 같은 그에겐 이미 늦은 일이었다. 위대해지고자 해도 세간의 번거로움이 방해했다. 그 번거로움의 씨앗을 찬찬히 살펴보자면 역시 돈이 없다는 것이 큰 원인이었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는 그는 그저 초조했다. 금력으로 지배할 수 없는 참으로 위대한 무엇이 그의 눈에 들어오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멀어 보였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162
‘돈이 필요할 때도 남이고 앓아누워도 남이고, 그럼 그저 같이 있다는 것뿐이잖아.’
겐조의 수수께끼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198
겐조는 돈만 바라보는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그 자신도 돈에서 멀어질 수 없는 모습을 보며 불쾌해한다.
겐조는 때로 형이 죽은 후 그의 가족을, 오직 생계 면에서만 상상할 때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잔혹하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겨 자신에게 허용했다. 동시에 그런 관찰을 피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일종의 불쾌감을 느꼈다. 그는 쓴 소금을 핥는 것 같았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186
어릴 적 사랑받지 못한 겐조는 가족에게도 서툴 수밖에 없었다. 겐조가 아내를 무시하는 태도는 종종 화가 나기도 했지만 가끔씩 이러한 겐조의 모습을 보게 될 때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녀는 맏딸이 수두에 걸렸을 때, 겐조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던 실례를 증거로 들었다.
“그때까진 날마다 안아 주더니 그 후 갑자기 안 안아 줬잖아요?”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236
맏딸을 자주 안던 겐조는 맏딸이 수두에 걸리고 나서는 태도를 바꿔 딸을 멀리한다. 부성애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인간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입은 겐조가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며 안타까웠다.
주인공 겐조는 마냥 남을 위해 희생만 하는 선인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타인과의 갈등 속에서 자기 자신은 언제나 옳은 이성적인 사람이라 믿고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저 아(我)와 아의 대립이었을 뿐이다.
그의 도덕은 어디까지나 자기에게서 시작되어 자기에게서 끝날 뿐이었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161
‘그저 남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고 강요해 봤자 나는 못해. 만약 존경을 받고 싶으면 존경받을 만한 실질이 있는 인간이 되어서 내 앞에 나서야 옳지. 남편이라는 견장 따위 없어도 좋으니까.’
이상하게도 학문을 했다는 겐조 쪽이 이런 점에선 오히려 구식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만 한다는 주장을 실현하고 싶어 하면서도 남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아내를 처음부터 서슴없이 가정하고 있었다.
...
‘여자라서 바보 취급 하는 게 아냐. 바보니까 바보 취급 하는 거지. 존경을 받고 싶으면 존경받을 만한 인격을 갖추면 될 거 아냐?’
겐조의 논리는 어느샌가 아내가 자신에게 들이대는 것과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이렇게 둥근 원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지쳐도 깨닫지 못했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199-200
‘언제 이렇게 변해 버렸지?’
인간의 변화에만 마음을 빼앗겼던 겐조는, 그보다 훨씬 심한 자연의 변화에 놀랐다.
‘나 자신은 결국 어떻게 될까?’
노쇠할 뿐 의외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과 현하여 날로 번화해 가는 교외의 자연이 겐조에겐 뜻밖의 대조적 자료가 되어 그는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196
세상은 점점 더 풍요로워지는 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다.
번창해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과거보다 자신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겐조와 아내 사이의 갈등과 같이 과거의 갈등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타인들과의 관계는 미래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끼친다.
계속해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겐조를 보며 나 역시도 해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겐조의 눈에 비친 이 노인은 그야말로 과거의 유령이었다. 또한 현재의 인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미래의 그림자임이 분명했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129
‘하지만 어떻게 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나 신기했다. 그 신기함 속에는 자신이 주변과 용케도 싸워 이겼다고 하는 자긍심도 상당히 섞여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 되지 않은 것을 이미 이룬 것처럼 간주하는 도취도 물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대조해 보았다, 과거가 어떻게 현재로 발전해 왔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 그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와 시마다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바로 이 현재 덕분이었다. 그가 오쓰네를 싫어하는 것도 누나나 형과 동화하지 못하는 것도 이 현재 덕분이었다. 장인과 점점 멀어져 가는 것도 이 현재 덕분임이 틀림없었다. 한편에서 보자면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 낸 그는 가엾은 존재였다.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259
“뒤끝이 있든 남자답지 못하든, 사실은 사실이지. 용케 사실을 지운다 해 봤자 감정을 죽이진 못하니까. 그때의 감정이 아직 살아 있다고. 살아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움직이고 있어. 내가 죽여 버려도 하늘이 되살려 놓으니 어쩔 수가 없지.”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285
“이 세상에 정리가 되는 일 따위는 거의 없어.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나 이어지거든. 단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기도 모를 뿐이지.”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을유문화사) 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