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나는 숨을 죽였습니다. 아기 사슴은 천천히 다가왔죠.
어찌나 바짝 다가붙던지 쓰다듬어 주어도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아기 사슴이 곁에 와서 내 뺨을 핥았죠.
아이, 좋아라. 정말 행복해!
모두들, 모두들, 나하고 놀아 주니까.
- 마리 홀 에츠, <나랑 같이 놀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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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단순한 그림체와 단순한 이야기.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닌, 그런 그림 책. 책 뒤의 해설을 보니 에츠는 원래 색을 극도로 아끼는 작가라서, "흑백만큼 풍요로운 색은 없다"라고 평소에도 말했다는데 <나랑 같이 놀자> 에서도 역시나 색이 별로 없다. 전체적인 바탕은 따뜻한 느낌의 노란색. 그리고 그 노란색보다 좀 더 짙은 노랑의 아이 머리 색깔. 얼굴의 살색. 매 장 새롭게 등장하는 작은 동물들의 황토색? 갈색? 요 정도 제외하고는 전부 가벼운 검은 색 색연필로 그린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햇님이 떠 있는 맑은 날에 한 아이가 들판으로 놀러 나갔다. 그곳에서 메뚜기, 개구리, 거북, 어치 등을 만나서는 "나랑 같이 놀자!" 라며 두 팔을 쭉 내밀고 다가가는데 모두들 후다닥 도망가 버린다. 의기소침해진 아이가 연못가에 앉아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자 도망쳤던 동물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마지막엔 그 경계심 많은 사슴까지 아이를 핥아준다. 아이는 동물들이 자신과 놀아준다는 기쁨에 충만한 행복을 느끼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누군가와 함께 논다는 것, 나와 놀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건 이런 행복감을 준다. 그건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급하게 두 팔을 뻗어 놀아달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을까? 나는 상대방이 좋아서 하는 행동이겠지만 상대에게는 겁을 주고 부담을 느끼게 만들어 도망치게 하고 있지는 않나? 항상 그렇진 않지만 때로는 상대방에 다가오기를 기다려야만 할 때도 있고 나와 상대방이 가깝고 친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아이가 동물들과 친해지는 과정 동안 하늘에서는 인자한 얼굴의 태양이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단순한 그림에 단순한 내용일지 모르지만, 아이가 입고 있는 하얀색 원피스가 나풀거리는 모습이라든지 동물들과 친해져보겠다고 뛰어다니는 동작이라든가 마지막에 연못에서 가만히 숨죽이며 동물들이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는 걸 곁눈질하는 표정 같은 건 아주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동화.
출처 : http://blog.naver.com/dionysos83/30107960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