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특히 그들 모두가 시거 연기를 코와 입으로 공중에다 뿜어 내는 태도를 보아 대단히 신경질이 나 있음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누이동생은 참 아름답게도 연주했다. 누이의 얼굴은 옆으로 숙여져 있고, 음미하며 슬프게 그녀의 시선은 악보의 행을 좇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될 수 있으면 어쩌면 누이와 눈길이 만날 수 있도록, 머리를 바닥에 바싹 붙였다. 음악이 그를 이토록 사로잡는데 그가 한 마리 동물이란 말인가?
- 프란츠 카프카, <변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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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을 처음 읽은 건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이다. 당시 난 고등학생이었고, 누군가의 추천으로 잠자리에서 이 책을 펴들었다가 결국 밤을 샜던 기억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너무나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으며, 나의 인지 능력이 사고의 속도를 따라잡히 못해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 책은 충격이었고 일종의 폭탄이었달까. 그렇게 기억의 저편으로 점점 사라져 가던 중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어렸을 때 읽었던 수많은 고전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지만 카프카의 <변신>은 다시 읽기가 참 꺼려지는 작품 중 하나였다. 그리 길지도 않은 중편 소설이고 문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음에도 손이 선뜻 가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 역시나.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 읽었을 때보다 더 우울하고 더 불편하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로 시작하는 소설 <변신>.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부터 독자는 충격에 빠지고 이 소설의 장르가 SF였던가? 하고 다시금 표지를 살피게 된다. 벌레만도 못한 인생, 벌레 같은 인생... 이라는 표현을 그냥 표현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주인공을 갑작스레 벌레로 만들어 버리는 신선한 시작.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살면서 연로한 아버지와 어머니, 음악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여동생을 실질적으로 부양해왔던 주인공 그레고르는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 보다는 벌레로 변한 나의 상태를 회사의 지배인이 알아채서 해고 당하면 어떡하나부터 걱정한다. 그의 이러한 속마음은 모른 채, 사람들은 그가 쓸모없고 흉하게 생긴 해충이라고 손가락질하며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심지어 그가 뼈를 깎는 고통으로 부양했던 가족들조차도 그를 외면한다. 심약한 어머니는 그레고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아버지는 화부터 내는 상황에서 여동생만이 그를 돌보지만 그녀 또한 그레고르를 돌본다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집안에서의 권력으로 행사하고 있다. 그레고르의 걱정과는 달리, 가족들은 상황에 재빨리 적응하고 각자 살 길을 모색한다. 연로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는 멀쩡해진듯한 몸으로 일자리를 찾아내고 어머니와 여동생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그레고르가 방 밖으로 나왔을 때 아버지가 던진 사과 하나가 등에 박혀 결국 그 상처 때문에 삶을 마감한다.
가족이란 것,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왔을 때 하나의 편안한 둥지며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 나의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지키고 싶은 단 하나의 것, 그만큼 누군가들에게는 소중하고 듣기만 해도 뼈에 사무치는 어떤 것. 하지만 그만큼 날 옭아매는 굴레이기도 하며 남보다도 못한 존재이기도 한 게 바로 가족이다. 그레고르가 뼈 빠지게 일해도 그건 장남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하며, 막상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어 아무것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없고 수치스러운 집안의 식충이가 되자 차갑게 외면하는 게 바로 그의 가족이었다. 참 슬픈 이야기지만, 내 주변만 봐도 가족 사이에서 그레고르 취급 받는 사람들이 제법 있고 그들의 부모와 가족은 혈육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옭아매며 착취한다. (이건 뭐 착취한다고 밖엔 표현할 단어가 없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었다고 묘사된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날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장애인이 되었다거나,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병에 걸렸다든가, 어떤 사정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전과자가 되었다든가 등등. 사회에서 착취 당하고 가정에서도 착취 당하는 무력한 개인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썩은 사과 때문에 목숨을 잃는 법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소설 속의 그레고르 잠자는 현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하는 희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생. 벌레가 되어 제 코가 석자인 상태에서도 음악적 재능이 있는 여동생을 어떻게 음악 학교에 보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그레고르. 읽으면서 어떤 의미로는 이상의 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음울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읽기 불편한 천재랄까. 이 책에는 <변신>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아주 짧은 단편과 에세이 같은 것들도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찬찬히 읽다보면 에드가 앨런 포 소설의 느낌이 나는 것들도 제법 많다. 그만큼 환상과 공포, 욕망과 절망이 뒤엉켜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 번 생각해 본다. 당신의 남편을, 아내를, 어머니를, 아버지를, 아들을, 딸을, 오빠를, 동생을... 돈이나 벌어오는 하나의 기계쯤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가 벌레가 되어도 가족으로서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받아줄 자신은 있는지. 그만한 자신은 없으면서 그들이 당신에게 주는 것을 넙죽넙죽 받아 먹고만 있는건 아닌지.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식인 벌레는 누구인지 말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dionysos83/30108504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