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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신혜우
  • 16,200원 (10%900)
  • 2025-04-01
  • : 8,410

그 고요한 사유의 공간

신혜우,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한겨레출판,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한겨레출판에서 신혜우 작가의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가 출간되었다. 미국 메릴렌드의 숲에서 자라는 식물을 관찰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에세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구성된 차례에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과 그에 관한 사유를 일기 형식으로 풀어냈다. 특히 세밀화와 드로잉으로 함께 본다면 더욱 실감나게 저자가 본 메릴렌드의 숲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상경한 뒤,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페페론치노와 아스파라거스. 벌써 2년이 넘었다. 페페론치노는 너무 무성하게 자라 가지치기를 했고, 그 가지를 다시 심는 바람에 어느새 집 안에는 페페론치노 나무가 네 그루나 되었다. 아스파라거스도 천장을 뚫을 기세로 자라나 몇 번이나 잘라내야 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식물의 수형에 대한 지식도 없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식물의 이미지에 맞춰 자르고 다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두 번의 사계절을 함께 보내며, 나는 식물의 힘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신기하게도, 식물은 자랄 수 있는 틈만 있다면 마구 자란다. 한동안 물을 주지 않아 말라버려도, 다시 물을 주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르게 몸을 키운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유일하게 ‘성장’을 멈추지 않는 생명, 바로 식물이다.

동물은 자라고, 멈추고, 늙는다. 일정한 사이클을 따라간다. 그러나 식물은 정말 잘만 돌보면 수백 년도 자란다. 노거수들이 그 증거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 끊임없이 성장하는 식물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머리맡에서 마구 자라나는 페페론치노와 아스파라거스를 바라보며, 나는 어느새 ‘어떤 공간의 중심으로 자리잡기보다는, 그 공간의 일부로 남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지식에 예술적 감성과 따뜻한 시선을 더해, 자연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낸다. 저자는 식물과 함께 살아가며 다른 공간들을 자주 떠올린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며 한국을 그리워하고, 익숙한 땅 위에서 낯선 얼굴을 떠올리는 시간들. 어쩌면 그것은 고요한 공간이 주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고요함은 식물이 만들어낸다. 침묵과 고요는 다르다. 이 책의 고요는, 잎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흔들리는 장면 속에 담겨 있다. 저자는 그 속에서 잎을 채집하듯 자신의 사유를 길어낸다. 난초의 씨앗이 특정 곰팡이의 도움을 받아야 발아한다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서로를 도우며 살아간다는 세계. 저자는 그런 식물의 세계에서 따뜻한 사유를 건져 올린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식물학자의 깊은 지혜를 감성 어린 시선과 섬세한 자료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따뜻한 봄날, 이 책의 텍스트와 저자의 그림을 함께 음미한다면, 그 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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