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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체육과 시
  • 김소연
  • 12,600원 (10%700)
  • 2024-11-11
  • : 3,853

답을 쫓아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 거야

김소연, 《생활체육과 시》(아침달, 2024)



응시하고 바라보며 제자리를 돌 때

보이는 새로운 풍경에 관하여

아침달 출판사의 <일상시화> 시리즈에서 김소연 시인의 《생활체육과 시》가 2024년에 출간되었다. 아침달 '일상시화' 시리즈는 시인이 생활에서 돌보는 테마와 시를 함께 이야기하는 아침달의 에세이 시리즈다. 시인이 저자인 이 시리즈는 시인의 생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테마를 깊게 탐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시리즈다. 이번 책인 김소연 시인의 테마는 '생활체육'이다. 생활체육은 걷기를 포함해 가벼운 운동을 뜻하는 용어인데, 시인은 생활체육이라는 몸짓으로 시와 삶의 윤곽을 따라 걸으며 자신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원동력에 관해 말한다. 귀하고 빛나는 발자국들이 많은 책이다.

몸이 하나의 질문으로 가득 찰 때가 있다. 어떤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이상할 때 계속 묻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말이다. 나는 무엇이 답인 줄도 모르는데, 이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어 무작정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제자리를 돌고 보았던 동네를 다시 보고, 가끔은 무거운 헬스 기구들을 들며 수축과 팽창을 반복할 때 가슴에서 문 하나가 열린다. 나는 그 문틈으로 불안한 나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나의 속에는 질문이 아니라 울분이나 번뇌들이 있었다. 불길한 마음이 질문의 탈을 쓰고 등을 찌른 것이다. 일어나서 걸을 수밖에 없도록, 걷다가 자신들을 풀숲이나 강변에 풀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답을 쫓아가면 두고 온 질문을 오래 생각하게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곳에서, 새로우나 불안한 풍경 속에서 다시 두고 온 질문을 찾으러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들. 그 순간들은 같은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나, 전혀 다른 풍경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나는 돌아감이 생활을 회복하는 과정 같았다.

김소연 시인의 《생활체육과 시》는 생활체육(걷기 등 가벼운 운동)이라는 몸짓으로 시와 생활의 여러 장면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몸을 움직이며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우리조차 알아보지 못할 때/ 누군가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걸/ 잠깐 그 이름을 모자처럼 쓰고 있다/ 벗어도 좋다는 걸” 같은 사유는 비애 속에서도 다른 길이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일말의 가능성 하나라도 발견하기 위해 생활체육을 하는 게 아닐까. 비애가 이 삶의 전부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있다. 그렇게 한 발씩 내디딜 때 조금 더 오래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그곳에서부터 자란다.

우람하고 오래된 키 큰 나무들이

서로의 가지가 맞닿아 만드는 그늘 아래에 도착한

초여름 속을 자전거를 타고 자주 지나갔다.

어떤 날은 소낙비가 퍼부어서

비를 다 맞으며 지나갔다.

옷자락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 채로 집에 돌아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오래도록 잊고 있던 종류의 미소를 혼자 지었다.

138쪽

최근 불가능함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불가능함이라는 막막한 벽 앞에서 혼자서 같은 자리를 맴돌곤 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소용에서 벗어난 것은 쓸모가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때 깊은 수렁에 이미 발이 빠진 줄도 모르고 허우적거릴 때 시인의 글을 읽었다. 가만히 읽으면서 계속 움직이고 싶었다. 생각을 따라 몸을 움직이면서 멀리 생각을 두고 오는 것이다. 길을 잃은 소처럼 다시 둘 다 집으로 돌아오겠지만, 나도 생각도 각자 생각을 하겠지. 돌아가는 풍경이 사뭇 다르겠지.

지금은 해가 조금 많이 긴 날이구나 생각하면서 언젠가 나도 소낙비를 맞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 읽고 나서 긴 여름날을 상상했다. 막연한 풍경에서 풍경이 되는 나를, 그럼에도 불안함이 나를 뒤쫓지 않아 마음껏 움직이는 나를, 그러다 짓는 미소에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그런 날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시인의 글은 이 모든 불안에 운동성을 부여한다. 불안이 스스로 집을 나서게 해 다시 문을 두드리는 때를 기대하게 한다. 그것이 참 좋아서 불안의 주인인 나는 자꾸만 집 주변을 걷는다. 마치 걷기가 취미인 사람처럼.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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