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
벌레는 온몸으로 세계를 만진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세계를 읽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대단한 독서량이다. 작은 나뭇잎 하나도 허투루 읽지 않고 정독한다. 그의 몸에는 초록의 언어가 가득하다.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르 잠자가 환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벌레를 살며시 만져보면 아기 살처럼 보드랍다. 꺾이거나 부러지지 않고잘 구부러진다. 몸의 유연성이 탁월하여 덩굴식물처럼 부드럽게 휘어지면서 난세의 협곡을 넘어간다. 그에게 해독되지 않는 세계는 없다. 개운산에서 만난 벌레는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상형문자였다. 너무 쉬워서 사람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몸의 언어였다. 벌레가 또 다른 문자를 고물고물 읽어나가는 동안 나무는 간지럼을 참지 못하고 기어코가지 끝에 웃음보를 터트렸다. 수국이었다. 독서광 벌레를 이해한 물색 고운 시였다.-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