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 고슴도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마음 속으로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 이 고슴도치는 지나치게 고민한다. 다른 동물들을 초대하기 위한 초대장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고는 결국 서랍장 안에 봉인한다. 그러곤 혼자서 동물들이 자기 집에 놀러온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온갖 상상들을 한다. 동물들이 자기 가시를 보고 겁을 먹지 않을까, 가시에 상처를 입지 않을까 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에선 자존감마저 위축된 것을 볼 수 있다.
겁나는 일이다. 그 동물들이 고슴도치와 어울리는 모습은 온갖 종류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피곤하다. 곤란하다. 당황스럽다. 그래서 섣불리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드는 상상들이 이어진다. 지나칠 정도로. 그러면서 고슴도치는 혼란에 빠진 질문에 도달한다.
『외로움은 내가 그렇게 되길 원하는 걸까? 고슴도치는 외로움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가끔 어둠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이 느껴지면 그는 이렇게 묻곤 했다.』
혹자는 이것을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하였다. 누구나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일이 있다면, 나는 그 시기, 조건, 상황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이것은 고슴도치가 지나치게 심약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믿는다. 이미 많은 연구들이 인간의 성격이 환경에 의해 어느 정도 변화한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그렇게 심연에 빠진 시간들에, 우리는 고슴도치와 같이 된다. 숨는다. 그러면서도 갈망한다. 먼저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마음을 먹는 것은 어렵다. 스스로 한계를 짓고 경계를 만드는 것이 모든 가능성을 말살하는 가장 큰 저해요인이 된다고 할때. 그럼에도 그것을 그만두는 것이 그토록 어렵기에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태어나려는 자는 알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고슴도치의 소원>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겨울'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상투적 클리셰가 있기에 형성되는 메세지.
읽으면서 결국에 이 지나친 상념들 뒤에 어떤 동물이 고슴도치를 찾아오게 될 것인가 주의하게 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듯, 이 책의 정수는 '고슴도치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음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