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할머니가 있다. 책표지에 나온 여자주인공의 이름은 엘사다.
여덟살의 작고 어린 소녀였던 나를 떠올리게 해주는 책을 만났고,
그 때 나의 할머니는 어떠한 이미지였는지를 그려보며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미래의 나의 손주에게 나는 어떤 모습의 할머니가 될 것인지도 함께 생각해보았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의 장편소설이다.
엘사의 할머니는 한마디로 '괴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누구든 미치게 만드는 초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 할머니'
하지만 그녀는 손녀인 엘사 앞에서 만큼은 다르다.
무.조.건 손녀의 아군이다.
손녀바라기 할머니...
그런 그녀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는데,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찾아가는 단서로 손녀에게 편지봉투를 남긴다.
엘사는 그 편지봉투를 손에 쥐고 이웃들을 만나면서 할머니가 어떤 정체의 사람인지를 알아가지만, 할머니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게 된다.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부분을 읽으며 나는 몹시도 울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엘사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엘사가 교장실에 불려가 있어도, 할머니는 나름의 언변으로 무조건 엘사를 대변한다. 마치 위기에 처한 시민을 구해주는 슈퍼히어로처럼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무섭고, 엄하고,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모습 밖에 없는데, 엘사의 할머니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아이라서 혼내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아닌, 손녀와 할머니가 친구처럼 그렇지만 위험한 순간에는 손녀를 구해내는 히어로처럼 할머니는 늘
그렇게 등장한다.
프랑스 작가의 책이라서 그런지 생경한 표현들이 군데군데 등장한다.
'모국어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라면 굳이 영어를 쓰지말라'고 말하는 엘사 아빠의 모습에서 모국어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와 엘사의 대화가 가장 가슴에 남았다.
딸이 좋아하는 해리포터라는 소설을 매개로 아빠는 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이가 책에 대해서 가지는 감정, 생각의 과녁을 적중하지
못한다. 그런 아빠를 딸은 답답해하지 않고 오히려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부녀는 결국 그들의 관계는 '이해'라는 것을 넘어서는 '사랑'하는 사이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문화적인 이질감을 넘어서서 이 작품을 본다면,
세대 간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아서 가슴 따뜻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