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제목을 들은 게 언제였을까…. 모르긴 해도 꽤 오래전이었던 듯하다. 소설 제목이 주는 달콤한 이미지가 있었고, 지금은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지만, 그 시절엔 그건 청소년들이 읽는 문학이라고 여겼다. 구병모라는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으나 내가 본격적으로 작가님에게 관심을 돌리게 되었던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라는 소설집을 보고 난 후였다. 그제야 언젠간 ‘위저드 베이커리’도 읽어보자 싶었는데 50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를 너머 스테디셀러가 된 그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표지를 보면 소설 ‘나미아 잡화점’ 이야기가 생각나는 듯한데, 나미아 잡화점 이후 유사한 책들이 많이 나왔고 그 이후 책들은 다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일 거라 생각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귀향이나 회복, 치유와 화해를 넘어 미래에의 전망을 드러내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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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출간되고 14년이 지났고 개정판으로 읽었기 때문에 이전판 보다 이야기가 좀 더 순해졌는지 아니면 매워졌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이전 책이 이 책보다 더 날 선 부분이 많다면 다시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이 좋았다. 나는 언제나 ‘견디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었다. 그것은 성장기를 지난 성인이든, 그 속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든 뭐든 좋았다. 물론 성인이 되어 이런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제발 아이들이 너무 일찍 어려운 일을 겪어 제 나이보다 어른스러워지는 모습들은 늘 마음이 아프다. 비록 내가 그 길을 걸어왔고 지금 이렇게 별일 없이 사는 모습을 보아 그들도 역시 그렇게 살아가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세상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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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최근에 창비에서 출간된 ‘사랑하는 이모들’을 읽었다. 나 역시 그 시절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회상 하다 보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정말 왜곡이나 가감의 변형 없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한 번씩 어른이 되기 이전에 시간과 감정을 다룬 소설들을 읽다 보면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지 않았겠는가…. 지금은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왔기에 괜찮다고 느낄 뿐….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에는 매일 빵집을 들르는 주인공 ‘나’가 나온다. 아이가 빵을 좋아하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이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왜 매일 빵집을 들르는지, 왜 말을 더듬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새엄마를 ‘배 선생’이라 부를 때만 해도 앞으로의 소설 전개를 예측하지 못했다. 언젠가 정용준의 단편 소설 ‘사라지는 것들’에서 이야기였듯이 주인공은 새로 형성된 가족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스스로 참고 말을 삼키고, 자신의 활동반경을 줄여가며 살아왔지만 결국 그것이 와장창 유리창이 깨어지듯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소설은 그런 일련의 사건으로 시작해서 주인공이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야기가 주는 환상소설은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나미아 잡화점, 그리고 나니아 연대기 등등.. 그런데 이 소설이 그런 고전과 다른 점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배선생이 주인공에게 가하는 일련의 여려 행위(결국은 아버지와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가부장제..)와 마음에 대한 묘사들이 현실에서 충분히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보다 덜하거나 더한 모습으로... 나는 작가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그보다 덜하거나 더한 사람들의 삶도 단 한 문장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우리의 주인공이 베이커리 점장에게 습격한 몽마를 자신이 개입하여 스스로 그 습격을 받음으로서... 점장은 말한다. ‘네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네가 겪은 그 일들이 다른 누군가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아마도 이 소설을 주욱 읽어 나가던 독자들도 마법사 점장의 그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주인공이 집을 나오게 된 이야기와 두 선택지로 인한 두가지의 미래를 보여주지만 그 사이사이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누군가에 대한 증오의 칼날이 스스로에게 향해 있음을, 혹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선택에 대한 여러 가지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비록 이야기의 형식은 전래동화의 형식은 아니지만 뭐랄까.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마음과 태도에 대한 오래된 교훈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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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려 다시 특정 시점에서 시작한다면 우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해온 실수를 만회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애초에 그런 일이 불가하기 때문에 빅터프랭클은 인생을 이미 두 번째 사는 것처럼 살라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인데, 두 번째 살라고 하는 의미는 매 순간을 소중히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살라고 하는 것일 테다. 나는 그 책을 읽을 당시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위저드 베이커리에 등장한 ‘타임 리마인드’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삶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살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되돌아 갈길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 우리에겐 그렇게 흘러가는 삶에서 지금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 소설이 너무 좋았다. 우리의 주인공이 시간을 되돌려줄 그 머랭을 먹었더라면, 아마도 소녀와 마법사 점장은 그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주인공이 그것까지 염두에 둬서 머랭을 먹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국 온 힘을 다해 그가 결정적 순간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부딪혔다는 데 있는 것 같았다. 내 기준에서 아이들과 청소년이 꼭 이런 일을 겪어야 성장해야만 하는 소설을 써야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구병모 작가는 언제나 그런 현실을 이야기해왔고, 그것이 현실보다 더 리얼리티를 느끼게 해주는 방식으로 내게도 주어진 삶을 순간을 인식시켜 주기 때문이다. 청소년 문학이니 청소년들은 어떻게 읽었는지도 사실 많이 궁금하다. 아마도 국내에선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 유사한 분위기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듯한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그런 책들이 서점가를 휩쓸게 되었는지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위저드 베이커리와 같은 책은 찾아보기 힘들 거 같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