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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
  • 피로사회
  • 한병철
  • 10,800원 (10%600)
  • 2012-03-05
  • : 27,990

그 노동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 본문 중

우리 사회는 고통과 억압에 대해 너무 무감하다. ‘기왕이면 대감집 노예’ 같은 표현을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단지 자조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비판보다 수용과 적응이 우선이라고 배우며 자란 우리는 스스로 노예 감독관임을 알지 못한다. 자기 착취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나를 노예로 만들고,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지, 나는 어떤 것을 욕망하고 그 욕망은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차근차근 생각하고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거의 경험하지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 신자유주의 아래 살아온 우리 또래는 노예 상태이면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여기는 착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자기 착취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으로부터 빠져나오기다.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을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사유는 불가능하다. 탈학습(unlearing)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상식과 지배적 지식이 누구를 지배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게 한다. 자본주의가 주입한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신념이 아니다. ‘대감집 노예’가 되고 싶거나 ‘갓생’을 살고 싶은 것은 개인의 가치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저항해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모양틀 속에 몸 구기며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 착취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주위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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