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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
  • 축복받은 집
  • 줌파 라히리
  • 14,400원 (10%800)
  • 2013-10-10
  • : 5,042

어떤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끌고 어떤 소설은 일상적인 문장으로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은 후자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인도계 미국인 출신으로 인도가 혼란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인도는 원래 단일 국가는 아니었다. 부족 개념으로 모여 있던 사람들을 땅덩이를 기준으로 인도라는 하나의 국가, 즉 통일체로 묶은 것은 영국이다.

인도 문명 속에는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세 종교가 살고 있었다. 각기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영국은 종교의 힘이 이렇게 셀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힌두와 이슬람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분할을 원하는 목소리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목소리보다 컸다. 무슬람 연맹이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독립하고, 이후에 힌두 세력인 인도도 이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1947년의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인도를 중심으로 왼쪽에 위치한 파키스탄과 오른쪽에 붙은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이 같은 이슬람이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인도를 사이에 두고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들은 부족 개념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수많은 언어가 있었고 파키스탄의 공식 언어는 자연스레 서파키스탄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된다.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적 세력과 문화적 인프라는 서파키스탄에 몰리게 된다. 이에 분노한 동파키스탄은 본인들의 공식 언어인 벵골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라는 시위를 하지만 1952년 서파키스탄은 학생 시위대를 사살하게 된다. 1956년 결국 벵골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게 되지만 둘 사이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파키스탄에는 공식 언어 지정에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독립을 원하는 세력들이 있었고 그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정치인을 서파키스탄으로 보내 그들이 정치 활동을 하게 한다. 그 사이 파키스탄은 인도와 카슈미르라는 지역의 자치권을 두고 전쟁해 패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서파키스탄은 인도에게 미움을 받게 되고, 동파키스탄에게 좋은 기회로 돌아간다. 정치적 다툼이 길어지고 동파키스탄에게 승기가 넘어가는 듯하자 1971년 파키스탄이 계엄령을 내려 동파키스탄에 군대를 투입한다. 동파키스탄 독립인사정치인들은 인도로 급히 피신 후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독립선언서가 퍼지면서 동파키스탄의 군인들은 내전 대신 방글라데시 독립군으로서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

게릴라전이 계속되었고 방글라데시 난민들은 인도로 몰리기 시작했다. 인도는 강 건너 불구경만 하다 난민이 너무 많이 몰리기 시작하자 상황을 종료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참전을 고민하던 차에 파키스탄에게 선공을 당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벌써 세 번째 부딪히는 것이었는데, 파키스탄은 계속된 전쟁으로 이미 힘이 빠져 있었고 군대는 국경과 동파키스탄으로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도는 강한 병력으로 밀어붙여 2주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소설에서 반복해 나오는 뱅골은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가장 인상깊게 본 단편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에서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의 갈등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인도인 부모를 둔 미국인 릴리아는 인도의 역사나 상황에 대해 잘 모른다. 학교에서는 미국(USA) 기준의 역사를 배우기 때문이다. 릴리아의 아버지가 민족적인 시각으로 인도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정서가 달라지고 감수성이 달라지는 것은 이민 1세대와 2세대가 갈등하는 전형처럼 보인다.

릴리아라는 10살 난 미국 꼬마와 피르자다 씨의 관계는 세심한 감동을 준다. 릴리아는 가장 미국적인 핼러윈에 대해 알려주고, 피르자다 씨를 걱정하며 미신적인 행동(초콜릿을 입에 넣고 녹을 때까지 기도를 한 뒤 이를 닦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둘 사이의 접촉은 없이 관계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이 인상적인데, 친구에게 피르자다 씨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에서 특히 감동적이었다.


“저분의 딸들이 없어졌거든.” 이 말을 하자마자 곧바로 말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사실이 되어버려서, 피르자다 씨의 딸들이 정말 없어져버렸고, 그가 다시는 딸들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딸들이 유괴되었다는 거니?” 도라가 계속 물었다. “공원 같은 곳에서?”

“딸들이 없어진 게 아니야. 내 말은, 그분이 딸들을 ‘그리워한다’‘없어진(missing)’을 ‘그리워하다(miss)’로 바꿔서 얘기했다는 뜻이었어.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어서 한참 동안 못 봤거든. 그뿐이야.”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축복받은 집』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그리 솔직하지 않다. 특히 내밀한 사이에 속마음을 털어놓기 힘들어하고, 낯선 사람을 통해 털어놓는다. ‘일시적인 문제’ 속 주인공 부부는 정전이라는 일시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비로소 고질적인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한다. 하지만 진심은 끝내 털어놓지 못하고 둘 사이는 끝이 난다. ‘질병 통역사’ 속 미나도 여행 가이드에게 자신의 비밀을 폭로해 줄 것을 부탁했고 ‘섹시’ 속 상황이 고조된 것도 처음 보는 직장 동료의 사촌 언니의 아들 ‘로힌’의 말 때문이었다.

일상적인 인물들이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나가며 일상적이고 고요한 상황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속에는 대게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매일매일의 문제부터 특정한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겪는 특수한 상황과 이민자로서 겪는 어려움이 녹아 있다. 역사를 일상의 순간으로 가져오는 것, 혹은 개인의 역사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는 시도가 돋보인다.

그러나 모든 단편이 그렇지는 않다. 걸작과 우화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인도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마구 풀어낸다. 역사적인 배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고, 그래서 소설이 좋게 느껴지는 걸까 의심해 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매력적인 인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상황과 배경에 대해 내 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묘사하는 능력은 여전히 탁월하다. (북미에서 많이 읽히는 현황을 보면 완전히 의심을 거둘 수는 없지만….)

이동진이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표현한 것처럼 '우화'로 보이는 작품은 다소 아쉽기도 하다. 이 책은 다양한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상을 받는 작품에 대해 무조건적인 신뢰는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소설에 대해서는 다소 폄하되는 경향을 생각하면, 그것이 제3세계 이민자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상의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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