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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ienne님의 서재
  • 보이지 않는 도시
  • 임우진
  • 14,850원 (10%820)
  • 2022-06-25
  • : 886

이 책을 보게 된 이유는 우리 도시와 유럽과 일본 도시의 묘지가 다르다는 점에 관해 의문을 품고 있던 중에 똑같은 주제를 발견하고 재빨리 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 실망이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다시피, 건축가들은 창조주의 입장에서 도시를 바라본다. 이러한 건축가의 입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저자는 묘지를 도시로 끌어들이면 죽음에 대한 태도가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창조주의 입장에서) 세계를 만들어 놓으면 인간들이 거기서 적응하여 잘 생활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죽음의 한 '표현'에 불과한 묘지를 변경함으로써 태도가 바뀔지 의문이다. 저자는 유럽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유럽인들은 중세시대에는 묘지 없이 매장했다가 가득 차면 유골을 수습하여 교회 지하실 같은 곳에 보관했다. 또한 페르라셰즈 묘지를 사람들의 태도를 바꾼 사례로 언급하고 있지만, 서울에는 국립현충원이 있고 봄이 되면 서울 시민들이 그곳의 벚꽃을 구경하러 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면, 묘지를 바꾼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태도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유럽과 한국의 차이가 밝혀져야 묘지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죽음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밝히지 못했다. 저자가 말하는 우리의 죽음의 태도는 최근의 것이 아닐까? 저자는 다른 장에서 '풍수'에 관해 언급하고 있던데, 묘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풍수 아닐까? 

좀 더 읽어본 다른 주제에서도 원인에 대한 분석 없이 현상을 치유하려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광장과 길에 관한 부분에서도, 유럽의 도시는 길을 기준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베네치아도 그럴까? 그런데 마치 우리의 도시는 길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듯이, 하회마을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 아래 광장을 중심으로 팔방으로 뻗은 길을 가진 팔마노바를 대비시켰다. 그러나 팔마노바 대신 베네치아의 항공사진을 삽입했다면, 유럽과 우리의 차이보다는 인간의 공통적 성질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문제 제기하려는 의도를 가진 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접근 방법에서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 저자만이 아니라 최근 몇 권의 저서로 유명해진 어느 건축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앞서 말햇듯이, 건축가들은 창조주의 입장에서 인간의 공간을 대한다. 창조주는 인간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창조주는 인간이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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