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을 위하여
김틱틱 2020/06/06 01:19
김틱틱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 김현종
- 18,900원 (10%↓
1,050) - 2010-12-24
: 1,279
모국을 벗어나보면 모국의 국제적 위상, 딱 그만큼의 대우를 사람들은 받기 마련이다. 저자는 유년 시절부터 성장기 전체를 줄곧 국외에서 보냈으며, 그 시기에 해당하는 60~80년대는 한국의 국제적 위치가 그다지 높다고 보기 어려웠던 때이다. 특히 저자는 외교관의 아들로 그 현실을 누구보다도 깊이 체감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국가와 자기 정체성을 강렬하게 동일시할 수밖에 없었을 성장 환경, 엘리트 민족주의자라 할 만한 그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다. 극단적으로 저자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곧 자기 자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민족주의는 평범하게 자기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그것과는 결이 다른 울림을 준다.
공직의 영역인 통상 장관과 UN대사를 마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사기업인 삼성으로 가면서, 저자는 "기업의 이익이 곧 국가의 이익"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는 국내 기득권의 오랜 정경유착이나 노동자 탄압의 역사를 연상시킬 수 있는 말과 행보이다. 따라서 그에게 한미 FTA 이후 특정 진영으로부터 씌워진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오해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국제적인 성장 배경 속에서 국가 단위의 사고를 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고 나면 얘기는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국가 발전의 기본 동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사 영역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는, 공직 이력을 바탕으로 금새 돈 많이 주는 사기업에 취직했다는 윤리적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국가 발전이라는 목표에 대한 자기 방식의 진심일 수 있다(2009년부터 삼성의 해외법인 사장으로 있었던 저자는 회사의 공동체적 가치관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3년 뒤 사직했으며, 다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 2012년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특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국제적 통상 협상의 생생한 현장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넓은 시야, 일과 삶에 대한 자세와 전략, 리더의 덕목, 실무의 방법 등 다양한 점들을 배울 수 있는 실용적인 책이다. 공직자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사심없는 자세가 왜 중요한지를 깊이 깨닫게 해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시종일관 객관적인 문체이나 공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열정을 다한 사람들과의 뜨거웠던 기억, 치열했던 추억의 기록은 머리를 뛰어넘어 마음으로 전해져 온다.
개인적으로는 그 떠들썩했던 한미 FTA에 대해 그다지 걱정도 관심도 없었던 기억이다. 각계각층의 비판과 떠도는 괴담에 의하면 나라가 망할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우선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일을 할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고(도덕적으로든 능력적으로든), 또 한미 FTA 타결 후 기자들 앞에 섰던 이 책의 저자, 김현종 당시 통상 수장의 말에서 어딘가 신뢰감을 느낀 터였기 때문이다. 도회적인 외모로 나이도 젊었고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왔다고 하는데, 그런 그가 사과·배 같은 구체적인 농산물들을 나열하며 어느 시기에는 명절이 있기 때문에 이런 품목은 이러저러하다는 등, 외적인 이미지와는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해서 독특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 정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듯하고 거대담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줄 알았었는데, 그가 하는 이야기는 생활과 멀지 않으며 구체적이었다. 그리고 수도세나 의료비가 하루아침에 수십 배가 될 거라는 소문들은 멀고도 허황되어 그다지 믿을 수가 없었다.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추상적인 이념의 말로 비난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그냥 나쁘니까 나쁘다는 식의 글도 많이 보았던 기억). 곧 생각을 정하고 신경을 끊었다. 시간이 흘러 한미 FTA는 발효되었고 괴담들은 현실화 되지 않았다. 대미 교역량이 늘고 흑자 수치는 두 배에 가깝게 올라갔으며, 오히려 자기들이 손해보는 것 같다는 강렬한 느낌적 느낌을 받은 미국 측은 재협상도 모자라 재재협상을 요구하며, 이제는 머리가 반백이 된 저자를 다시 한 번 FTA 협상판으로 불러냈다.
이 책 이후의 이야기들은 저자의 블로그에서 읽어볼 수 있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