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언제든지 올 수 있다
omertaspeaks 2025/04/1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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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 장아미
- 12,600원 (10%↓
700) - 2025-04-11
: 332
동이 틀 시간은 지난 지 오래건만 창밖은 여전히 어슴푸레합니다. 여명은 두터운 먹구름의 윤곽으로나 확인할 수 있을 뿐이고 키 큰 나무들이 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걸 보니 요란한 폭풍우라도 한차례 몰아칠 기세입니다. 밤을 새운 듯 퀭한 눈을 한 여자는 탁자에 앉아 띄엄띄엄 건성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인형에서 바늘을 빼냅니다. 그건 안에 새빨간 솜을 채운 검은 고양이 인형인데, 세 개째 꼬리를 막 붙인 참입니다. 창밖의 세상을 무심하게 일별한 여자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입술을 떼고 내내 흥얼거리던 멜로디에 느릿하게 가사를 싣습니다.
찐짠 찌가찌가찐짠 찐짠찐짠 하더라.
단편 셋과 에세이 하나를 엮는 트리플 시리즈로 나온 장아미 작가님의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를 읽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침대맡 협탁 위에 놓인 고양이 표지의 책을 보았을 때 제 머릿속엔 저런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어딘가 쓸쓸하고 외롭지만 한숨 한 번이면 그럭저럭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핏 보면 폭신하고 귀여운 인형인데 깊이 들여다보면 뜨겁고 매혹적인 빨강으로 가득합니다.
일 년에 한 번 겨우 만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안도감이 잦아들기도 전에 찾아오는 건 그와의 이별입니다. 흥겹고 시끌벅적한 생일잔치는 주인공만 덩그라니 남겨둔 채 끝이 나기 마련입니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위로하던 연인들은 세상의 편견에 치명상을 입습니다.
세 편의 작품은 이렇게 상반된 심상들로 독자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아름다운 문장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포옹하지만 이내 감췄던 손톱으로 등을 긁고 파헤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세상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동시에 어느 하나 때문에 세상이 뒤집히지도 않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노쇠한 신이 생을 다한 자리에는 어린 신이 태어날 것이며, 기다림이 이어지는 한 작별은 언제까지고 미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책에 수록된 심완선님의 해설이 너무 좋아서 (특히 <능금>의 감상은 이 해설까지 읽어야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망설여졌지만, 부족하나마 제 나름의 감상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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