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우정과 성장에 대해
omertaspeaks 2023/09/0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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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 장아미
- 12,420원 (10%↓
690) - 2023-08-30
: 81
얼마 전 지인과 함께 볼 영화를 고르던 중이었다. 그분께서는 세상 모두가 무너진 재난 상황에서 아파트 하나만 멀쩡히 남았다는 설정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셨고, 그 영화는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어떤 이야기에 대해 ‘말도 안 돼’라고 느끼는 순간 그 이야기는 전혀 다른 감상을 낳게 되거나 감상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이야기 안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말도 안 돼’라고 반발하는지, 투덜거리면서도 온전히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 방향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마음가짐까지도.
장아미 작가님의 장편소설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는 소원을 비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로 인해 새로 변해버린 친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김이삭 작가님이 발문에 언급한 대로 서양식 판타지와 달리 현실에 곧바로 맞닿아 있는 동양식 판타지의 특징 혹은 정서 때문일까. 초현실적인 상황에도 뒷걸음치지 않고 손전등을 비추며 귀를 기울이는 등장인물들 때문일까. 독자들은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에 등장하는 성주, 조왕, 업 등의 토속 신앙에서부터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새, 도시의 넋으로 태어난 소녀, 달그림자 긷기 의식 같은 요소들을 페이지 밖에서 낯설고 신기하게 구경한다기보다는 세 소녀와 함께 손을 잡고 새를 찾아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징검다리를 건너게 된다.
고택을 허물고 다시 지으면서 나무며 기와를 그대로 가져다 쓴 집에 사는 덕분에 자연히 가택신들과 함께 살고 있는 희미, 내키지 않았던 신도시로의 이사 후 탐조(探鳥)에 빠져든 민진, 그리고 옛날 옛적 호랑이를 부리던 산신처럼 고양이들과 어울리는 수수께끼의 인물 새별.
서로 다른 성격과 전사(前史)를 지닌 캐릭터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같은 목표를 향해 보폭을 맞추어 앞으로 나아가는 최고의 성장 스토리. 거기에 세심하게 선택된 어휘들이 그려내는 환상적인 장면들은 제아무리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라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정도여서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독서를 마치고 김이삭 작가님의 발문까지 정독한 다음, 소설의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소설 속에서 새와 소년이 지목하는 대상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별은? 세 소녀 중 하나인 새별을 가리키는 건 아닐 테다. 균형이 맞지 않으니.
자신을 비추는 빛을 반사해서 반짝이는 ‘별’은 어쩌면 다양한 소원과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현실의 모습을 비추는 ‘환상’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환상과 현실은 매우 비슷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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