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솔직히 작성한 리뷰입니다.
괴로울 땐 글을 쓴다. 가슴 뜯는 고통이, 슬픔이 글을 쓰게 한다. 글을 쓰면 신기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고통과 슬픔이 달래진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는 이유는 그렇게 슬픔을 언어로라도 담아내면 조금은 견딜만 해지기 때문 아닐까.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삶의 고통, 고독, 열망, 결핍, 상처 등을 시로 승화했던 여성 시인 100인의 이야기와 작품을 담고 있다. 연대 순으로 이어지는 시인들을 한 명 한 명 알아가노라면, 이렇게나 먼 옛날부터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과 목소리를 언어로 남긴 여성들이 있었음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에 실린 시인들의 사연은 대부분 기구하다. 가난, 은둔, 과도한 노동,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부양해야 될 가족,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부모형제들,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이별, 사별,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지병, 자살, 요절,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불평등, 전쟁까지.
하지만 존재를 짓누르는 험난한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언어를 놓지 않고 시를 놓지 않았다. 지금은 SNS, 메신저 프로필 등으로 내면이나 감정을 알릴 방법이 널렸지만, 여성은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기에 당당하게 마음을 언어로 담아냈던 시인들의 용기가 감탄스럽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내겐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고되고 아팠던 그들의 삶과 글을 읽어내려가며 힘을 얻었다. 일기장에 고통스러운 마음을 토로하며, 시로 내면의 고통을 견디고 존재를 지탱했던 그들에게 공감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에는 굉장히 여백이 많다. 그 여백에 내 의견을 쓰기도 하고 스스로 짧은 시도 지어보면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어쩌면 출판사에서 그러라고 만든 여백이 아니었나 생각도 든다.

//여백 만큼 내 생각이 머물 자리가 된다
시는, 글은, 언어는 위안이 된다. 소화되지 못하는 버거운 감정과 고통을 언어에 담아 실처럼 자아내 혈실로 추출해냄으로써 거기에 압도당하지 않을 힘을 얻는다. 압도당해 존재가 흔들리면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 언어의 힘으로 나를 지탱할 것이다. 그것이 옳은 결심임을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를 읽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끝으로, 격변의 시대를 지내며 자신의 삶과 존엄을 글로 지켜냈던 선구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올린다. 그들이 썼던 시 몇 개를 공유한다.
여성의 노동
-메리 콜리어(1690?~1762?)
나는 배움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다.
평생을 고역 속에서 보냈을 뿐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것이 나만의 일이 아님을
나는 안다. 가난한 여자라면 누구나 짊어진 몫임을.
하루의 고된 일에서 풀려나
침대에 누운 밤, 나는 종종 생각했다.
우리가 처음 빚어진 그 바탕이
노예로 살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닐 텐데.
저자가 자신의 책에게
앤 브래드스트리트(1612~1672)*
내 가녀린 뇌가 낳은 못난 자식아,
태어나 줄곧 내 곁에만 머물다
지혜보다 충정이 앞섰던 친구들이 가로채
세상 사람들 눈앞에 너를 내놓았구나.
너는 누더기를 걸친 채 비틀거리며 인쇄소로 끌려가
허물이 줄기는커녕 세상의 판단거리가 되었지.
돌아온 너를 보며 내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렸는지,
활자가 되어 떠도는 이 말썽꾼이 나를 엄마라 부르다니.
빛을 보기엔 모자란 듯싶어 너를 밀쳐두었지만,
네 얼굴이 내 눈엔 너무나 거슬렸지만,
내 자식이기에 끝내 애정이 생겨
할 수만 있다면 네 흠을 고쳐 주고 싶었어.
얼굴을 씻겨 보아도 결점만 더 눈에 띄고,
얼룩 하나 지우려다 흉터만 더 만들었구나.
운율을 맞추려 네 마디를 억지로 늘려 보아도,
여전히 너는 보기 싫게 절뚝거리며 달리는 구나.
더 좋은 옷을 입혀 꾸며 주고 싶었지만,
집 안에 투박한 무명천 말고는 있는 게 없구나.
이 차림 그대로 평범한 사람들 사이를 떠돌려무나.
부디 비평가들의 손에는 들어가지 말고,
너를 모르는 곳으로 길을 잡아 가렴.
아버지가 누구냐 묻거든 없다고 말해라.
그리고 네 엄마는, 가련하게도 너무 가난해서,
너를 그렇게 문밖으로 내보낼 수 밖에 없었노라고.
*
고된 삶 속에서도 예술의 빛을 잃지 않았던 미국 최초의 여성 시인 앤 브래드스트리트(1612~1672). 그녀는 "여덟 명의 자녀를 키우는 고단한 가사 노동 속에서도 지적 갈망을 놓지 않고 시를 썼다".
앤의 제부가 허락도 없이 원고를 가져다가 영국에서 시집을 출간했는데, 그녀는 기뻐하기는커녕 그 사실에 몹시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퇴고가 다 되지 않은 미완성 원고를 가져다가 책을 낸 셈이니 시인으로서 부끄러워 한 것이다. 여덟이나 자식을 둔 그녀다 보니 시 또한 자식처럼 느껴졌으리라. 그 마음을 노래한 시가 인상 깊다.
세입자
-매리 길모어(1865~1962)
아버지가 그러했듯 나도 떠날 것입니다─
수천 가지 계획을 머릿속에 품은 채,
아직 다 쓰지 못한 무언가를 간직하고,
죽음이 삶의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
어머니가 그러했듯 나도 떠날 것입니다─
막 써 내려간 글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내 삶이라는 집의 임대료로
녹슨 것은 결코 내지 않겠습니다.
책 한 권
강경애(1906~1944)*
나는 가난합니다
그리고 또 외롭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나는 슬플 때마다 또 기쁠 때마다
따뜻한 가슴속에서
그 책을 남모르게 꺼내여
하루에도 몇 번씩
차례차례 보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끝도 없는 영원의 나라를 그려봅니다
그 책은 비록 해여졌으나
해여지면 해여질수록
나는 더욱더욱 귀여워합니다
나는 가난하고 또 외롭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하는
이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오 나는 행복합니다
*
일제 강점기 리얼리즘 소설가이자 시인 강경애(1906~1944).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계부 밑에서 의붓형제들과 자란 강경애에게 시는 "현실의 고통을 견디게 해 준 유일한 정신적 보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