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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666님의 서재
  • 프랑스사 강의
  • 시바타 미치오
  • 16,020원 (10%890)
  • 2024-10-10
  • : 418

어른이 되어서 시험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읽고 싶어서 손에 든 역사서라면 단순한 역사적 정보보다 이 책을 쓴 저자만의 역사적 해석과 통찰이 더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 <프랑스사 강의>는 시바타 미치오라는 프랑스 역사가의 눈과 말로 프랑스라는 나라의 시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커다란 줄기를 관통한다. 저자는 거침없이 지금 프랑스가 자리한 땅덩어리가 '갈리아'라고 불리던 시절로 계곡물을 거슬러오르듯 거침없이 치고올라가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호쾌하게 물줄기를 타고 내려가며 역사적 사건과 그 의미에 관해 풀어놓는다.


긴 세월 한 분야만을 연구하고 정보를 집적하여 통찰을 이끌어낸 학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있는 문체와 확고한 어조를 따라가다보면 프랑스라는 에펠탑의 낭만과 혁명의 환상으로만 어렴풋이 알던 나라의 실체가 손에 닿는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좌파니 우파니 하는 정치 용어들이 어떻게 프랑스에서 체계적으로 생겨났는지, 사회 계급은 어떻게 생겨나고, 혁명이란 왜, 또 어떻게 일어났는지, 왕은 어떻게 생기고 왕국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귀족은 왜 기득권이 되었는지,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주변국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생겨났고 불화가 생겼는지, 유럽이라는 지역세계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끼리 얽혀있는지 등등,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은 손에 다 꼽을 수도 없다. (정확히 '지식'이라고 칭하기 보다는 인문학적 저변이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


저자는 큰 줄기만 다루고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다루지 않지만 그 큰 줄기만 따라가는 데에도 벅찰 만큼 책의 곳곳이 가치와 의미로 가득 차 있다. 읽고 시험을 칠 것도 아닌데 여기저기에 밑줄을 마구 치게 된다. 자발적으로 읽는 역사서는 정말로 인류사적 의미나 내 인생에 통찰을 주거나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하는 곳에 밑줄을 긋게 된다. 이게 어른의 독서를 위한 독서구나, 하는 실감이 새삼 든다.

이 책은 앞서도 말했지만 가치로 충만하다. 저자만의 깊이 있는 역사적 해석과 시각이 돋보이며, 단 한 줄도 가볍게 쓰이지 않았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진한 사골국물 같은 책이라고 느꼈다. 읽으면서 부담스러운 대목도 꽤 있었지만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프랑스는 물론이고 역사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프랑스사라는 국민국가의 역사는 자기 완결된 세상이 아니다. 유럽 혹은 세계 전체의 관련 속에서 형성되어온 상대적인 것이고 '프랑스 역사상'도 이를 고정적 혹은 절대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자 후기, 294p


역사가 상대적인 것이듯 역사의 시각에서 국가를 볼 때 그 자체로 어떤 고정적인 단위로 생각해서 안 된다고 저자는 책 초반부에 일찍이 밝히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도 일본도 장기적인 역사 분석의 자기 완결적인 단위는 아니다. 일국사의 집적이 세계사라고 생각하는 시점은 19세기에 탄생한 '국민국가'라는 국가 모델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10p

지역세계(ex.유럽, 동아시아 등..)는 각각이 고유의 전개와 구조를 갖고 있고 고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역사적인 형성체이자 각각이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고, 역사적인 발전에 따라 지역세계의 확대나 구조가 변용하며 그 관계의 총체인 세계 체제도 전환한다.



이 책은 프랑스에 대해 다루지만 주변에 긴밀하게 얽힌 영국, 독일, 스페인, 근대에 와서는 미국까지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맺고 대립한 역사를 통해 한 나라의 역사가 그 나라만을 바라보아서는 온전히 해석할 수 없음을 전한다.


또한 저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때때로 일본이 언급되기도 하고 일본인이 바라보는 프랑스사이기에 한국인으로서 일본적 시각이 의식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일사가 궁금해지고 일본사도 궁금해진다. 한국사도 궁금해지고 미국사도 궁금해진다. 이 나라들은 주변 나라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고 어떤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저자의 깊은 지성과 방대한 지식의 세계, 수십 년 간의 연구와 정보 집적을 통한 통찰의 진수를 더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가 인문학 서적을 읽는게 아닌가 싶다.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과 문장을 통해 저자의 학문적 세계와 정신세계 그 자체와 만나기 위해서.


나는 이 책 <프랑스사 강의>를 통해 시바타 미치오라는 일본인 역사학자가 보여주는 프랑스 역사관을 탐험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나의 인문학적 경계를 넓혀준 뜻깊은 책이 되었다. 읽으면서 나에게 저자의 통찰을 따라갈 지식이 부족해 부끄러움과 갈증을 동시에 느꼈다.


유럽의 역사, 세계사, 독일사, 영국사까지 익히고 나서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땐 저자가 전하는 의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통찰을 다른 역사와 연결해서 나만의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나라의 역사에 대해 읽는 것은 이해가 다 되든 안 되는 뜻깊은 일이었다. 역사적 사건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확실하게 집어서 알려주니 감사했다. 또한 한 연구자의 통합된 시점을 공유받아 평범한 사람은 쉬이 얻을 수 없는 역사적 통찰을 엿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부끄럽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아야겠다는 성찰을 하게 하기도 했다.


시험 준비나 지식 습득 차원에서 완전히 벗어나 단지 세계를 향한 나의 인식을 넓히고 깊게 하기 위한 역사서 읽기를 여러분께도 권하고 싶다. 어딘가에 있을 '한국사 강의'도 얼른 찾아 읽어봐야겠다. 한국이란 나라의 역사적 물줄기를 따라 기꺼이 난해한 모험을 떠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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