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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onesuh님의 서재
  • 올리브 키터리지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15,120원 (10%840)
  • 2010-05-06
  • : 9,858
1. 열세편의 단편 묶음

<올리브 키터리지>는 미국 잉글랜드 메인주의 바닷가 마을, 크로스비에서 살아가는 올리브 키터리지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총 13편의 단편소설을 구슬 삼아 올리브라는 실에 꿰어놓은 작품이다.

소설은 <약국>이라는 제목의 단편에서 시작한다. 중년의 올리브와 그녀의 남편 헨리 키터리지의 이야기이다. 그다지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부부의 이야기가 여상스럽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헨리와 친절을 경시(?)하는 올리브는 얼핏 보면 피차 상극이다. 매사 부딪힌다. 게다가 올리브와 헨리는 마음 속에 각각의 다른 사랑 하나씩을 비밀스럽게 품고 살아간다. 헨리는 약국의 일을 도와주었던 데니즈, 올리브는 나무에 차를 박아 교통사고로 죽은 짐 오케이시를 품고 살아갔다.

<밀물>은 케빈 코울슨과 올리브의 사연이다. 케빈은 올리브의 제자였다. 케빈의 어머니는 자살을 했다. 올리브의 아버지 또한 유서 쪽지 한 장 없이 불시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에, 둘은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다가 깊은 우울감이 사람을 죽게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러다 물어 빠져 죽으려하는 패티라는 여인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피아노 연주자>는 앤젤라의 이야기. 앤젤라는 마을의 한 음식점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살아가는 여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몸을 파는 여자였고 심지어는 앤젤라와 애인과 삼각관계를 이루기까지 한다. 깊은 슬픔과 우울로 살아가는 앤젤라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결혼하지 못한 채, 마을의 행정의원 맬컴 무디와 불륜 관계다.

<작은 기쁨>은 헨리와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토퍼의 결혼식 에피소드다. 도시 여자 수잔과 만난 지 6주만에 결혼하는 아들을 올리브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바라본다. 아무래도 올리브는 며느리가 될 수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연하게 수잔을 통해 아들 크리스토퍼가 엄마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게 된다.

"그이는 힘든 시간을 겪였어"

이 말을 들은 올리브는 기분이 몹시 상해, 몰래 며느리의 스웨터를 망가뜨리고 신발 한 짝을 훔쳐서 버려버린다. 아주 소심한 화풀이를 실행에 옮긴다.

<굶주림>은 하먼과 보니의 부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먼은 철물점을 운영하는, 가정이 제일인 남자이고, 보니는 다소 건조한 사람이다. 이 둘의 화두는 오직 도넛, 이 둘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개체가 도넛이다. 중년을 훌쩍 넘긴 부부에게 문제가 생긴다. 빈둥지 증후군. 보니는 더이상 남편과 부부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하먼은 준비되지 않았다. 자식들로 출가하고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부부는 위기다. 결국 하먼은 같은 마을 사람 데이지에게 그 사랑의 마음을 옮기고 불륜관계가 된다. 아내가 이 불륜을 알아차리기를 바라면서.

<다른 길>은 화장실 인질사건이다. 병원에 간 올리브와 헨리는 공교롭게도 병원 화장실에서 총을 든 한 소년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었다. 위험에서 서로를 보호하려다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각각 상대로부터 듣게 된다. 올리브는 헨리의 어머니(시어머니)를 경건에 매몰된 위선자라고 생각했고, 헨리는 아들 크리스토퍼(크리스)가 그들을 떠난 것은 올리브의 지나친 통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속마음을 예기치 않게 알게 된 그들은 마치 '다른 길'을 걸어가는 부부처럼, 마음의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 서로 다른 사람을 품었을 때보다 더 위기의 시기를 맞게 된 헨리와 올리브.

<겨울 음악회> 제인은 음악회에 참석해서 남편, 밥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된다. 남편의 (과거의) 그녀가 죽을 병을 얻었다는 것, 그녀의 부탁을 외면하지 못해 그녀를 만나고 왔다는 것,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제인은 맘이 상하지만, 남편을 믿고 싶다.
"서로를 빼면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기에. 그마저도 없다면 그들은 어쩐단 말인가?"(251)
이 문장이 노년을 향해 걸어가는 부부의 정직한 마음이다.

<튤립>에서는 라킨 부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로저 라킨과 루이즈 라킨은 부부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이들 부부는 비극적 사실이 있다. 아들의 범죄. 살인인가보다.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는 수잔과 결혼하여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버렸다. 올리브는 외로움의 병이 든다. 그래서 감옥 같은 루이즈의 집에 갔다. 자기 보다 더 괴로울 루이즈 집에 가면 루이즈의 불행이 자신을 위로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언감생심 위로 따윈 느낄 수 없었다. 올리브의 남편 헨리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고 그예 일어나지 못하고 실명까지 하게 된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하지만 그 여자(루이즈)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루이즈 라킨을 찾아간 것은 잘못이었다.......이 이상하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그녀는 자신이 대체 누구라고 생각했던 걸까?"(293)

이 문장 안에서 올리브의 불안과 외로움이 출렁거린다. 다만 그녀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튤립을 언제 심어야 하는 지, 그 시기다. 모호함이 가득하여 불안하기만 한 세상에 던져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듈립을 언제 심을 지 결정하는 일. 그녀가 정원을 가꾸는 일에 열심인 이유다.

<여행 바구니> 에드와 말린은 부부다. 에드는 투병을 하다 결국 죽게 된다. 마을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던 이들 부부는 고등학교때부터 연인이었고, 종내는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 에드의 죽음, 장례식을 치루면서 아내 말린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에드에게 내연녀가 있었다는 사실. 마을의 케리와 내연의 관계였다는 사실을 장례식에 참석한 케리 본인에게서 듣는다. 추호도 남편을 의심하지 않았던 말린에게 이 사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미 죽은 남편에게 어떠한 복수도 할 수 없는 상황. 병이 회복되면 여행을 가자고 계획하며 '여행 바구니'를 싸두었건만, 그 추억마저 분노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말린은 침통하다. 자신만 몰랐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며 케리에 대한 살의를 올리브에게 고백한다. 올리브는 말린의 그 살의를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다. 자신이 그랬지 않은가.

<병속의 배> 애니타와 짐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딸, 줄리와 위니. 줄리가 브루스와 결혼을 하는 날이다. 그러나 브루스는 줄리를 떠나고 만다. 아마도 줄리의 엄마 애니타 때문일 것이다. 애니타는 진정제를 먹지 않으면 감정의 격동을 이기지 못한다. 어느 날 바다에서 죽음으로 돌아온 아버지, 그녀는 아버지와 지냈던 집을 떠나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을 그곳에 가두고 산다. 그 집은 살기에 형편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브루스는 지하실을 가득 채운 배를 만든다. 과연 그 배를 타고 이들 가족이 떠날 수 있는 날이 올까.

<불안>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가 재혼한다. 재혼한 아내, 앤에게는 이미 전 남편과 사이에 아이 둘이 있다. 이것부터 올리브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크리스와의 사이에서도 아이가 태어났다. 크리스가 엄마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자신이 있는 도시, 뉴욕으로 올리브를 초청한다.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 자못 설레는 마음으로 아들네 집에 가지만, 결국 3일의 평화를 뛰어넘지 못하고 아들과 심하게 다툰다. 아들을 그리도 사랑했건만, 아들은 힘들었다. 널뛰는 엄마의 감정과 그녀의 통제가.

"(크리스토퍼가) 이젠 엄마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을 거에요"
엄마에 대한 두려움? 누가 올리브를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두려운 것은 바로 그녀였는데!(414)"

올리브는 심하게 다친 마음으로 아들집을 떠난다.

<범죄자> 레베카는 목사 집안의 후손이다. 외할아버지도 목사, 아버지도 목사.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초반부처 이상하다. 대화의 경계를 모른다. 상황과 맥락에 맞게 주고 받아야 할 대화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불필요한 정보들을 수다스럽게 말한다. 이상하다. 아버지 브라운 목사와 결혼한 엄마 샬롯은 레베카를 낳자 배우가 되겠다고 집을 떠난다. 레베카는 엄마에게 버림 받는다. 아빠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맞지 않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대화가 없이 지냈다. 정서적 교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종교적 윤리가 강화된 분위기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묘하게도 아버지 브라운 목사와의 관계가 석연치 않다. 그저 아버지와 딸의 관계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바라서 레베카는 아버지의 밥상에 늘 버터가 듬뿍 넣은 요리를 한다. 아버지는 결국 심장병으로 죽는다.

<강> 올리브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긴다. 잭 케니슨과의 만남. 남편 헨리는 아직 요양 병원에 입원 중이다. 뇌손상으로 실명까지 한 헨리, 남편이 다시 일어설 가망은 없다. 올리브는 헨리에게 매일 병문안을 갔지만 헨리는 요양병원에서 죽고 만다. 잭의 딸은 레즈비언, 그는 딸을 받아들일 수 없다. 외롭게 살아가는 그가 산책을 하다 쓰러지고 그 현장을 올리브가 발견한다. 올리브가 도움을 구하러 자리를 떠나려 하자 잭이 붙잡는다.

"그러지 말아요. 날 혼자 두지 말아요"(454)
"죽어도 상관하지 않는다구요. 그냥 날 여기 버려두지만 말아요"(455)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외로움이었다.

올리브는 새로운 사랑을 향한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이 남자의 곁에 누우며, 그의 손을, 팔을 어깨에 느끼며 올리브는 생각했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사랑이 눈 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483)

2. 예사롭지 않은 찌질한 이야기들,,

열 세편의 장편을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키로 꿰어서 한 편의 소설을 만들었다. 언급한대로 이 소설에서는 하나같이 제대로 된 인물들이 없다. 불륜, 비행, 폭력, 다툼과 학대, 이상행동 등. 작가는 실제로 뉴욕에서 20년 이상을 살았지만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인 메인주가 자기 작품의 근원이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읽자하면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메인주의 크로스비라는 마을이 어떤 곳이기에 이리도 하나같이 찌질하고 성한 사람이 없는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상과 다소 판이하다. 나는 섭식장애로 음식 거부를 하는 청소년, 그러다 결국에는 심장 쇼크로 죽음을 맞이한 청소년, 총을 들고 강도질을 하는 청소년, 딸의 장래는 고사하고 딸의 애인을 빼앗으려는 몸을 파는 엄마, 살인죄를 저지른 아들을 둔 엄마,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이나 아내, 정확하지는 않지만 목사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음직한 사연 등, 이런 기막힌 일들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 전체는 이런 이야기로 즐비하다.

그러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이런 일들을 마치 일상의 문체처럼 기술한다. 그녀의 기술에는 인물들을 향한 어떠한 윤리적 판단도 내포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이 그럴 법한 개연성을 곳곳에 배치하고, 독자가 최대한 소설의 인물들에게 골몰하게 한다. 그들이 당한 일, 겪었던 일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찾아온 공허, 외로움, 좌절, 낭패,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추측하다 보면 어느새 독자마저도 그들에 대한 윤리적 판단보다도 연민으로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를 겪게 된다. 특히 <범죄자>에서 인물을 향한 작가의 배려가 절정에 달했다고 느꼈다. 레베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가 그녀를 버리고 가출했다는 것, 엄마가 가출하자 마자, 목사 아버지의 마누라 같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등이 레베카의 이상 행동의 배경으로 묘사되면서 레베카를 매우 세밀하게 따라간다. 작가가 레베카와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경험하지 않는 세계를 그 인물의 입장에서 그려간다는 것은 애정이 없이 가능하지 않다. 작가가 그려준 시선 때문에 나 또한 외연이 보여주는 편견을 거두고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윤리적 판단에서 물러서게 된다. 매우 평면적인 시선에서 떨어져 입체적인 시선, 작가에게서 이런 시선을 배우는 되는 것이다.

3. 올리브

<올리브 키터리지>를 한 번 읽었을 때는, 올리브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매우 평면적인 읽기 때문이었다. 며느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꼬지 하는 거며, 나의 불행의 위안을 삼고자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는 행동, 매사 거칠고 배려가 없는 말의 본새 등이 맘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맘에 들지 않았다. 세상은 휘황찬란한 불꽃놀이가 아니기에 친절이 필요하다. 화가 르느와르가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 밝은 것에 집착하며 그것들을 그려냈던 것처럼 말이다. 어두움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삶을 축제로 보느냐, 싸움으로 보느냐, 이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축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고통스럽지만 축제.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그런 시선으로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올리브의 눈에는 온통 싸워야 할 것들이다. 올리브에게 세상은 너무나 모호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휴화산 같았다. 이것은 불현듯 총으로 자살을 한 아버지를 둔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한 것일 게다. 그녀는 매사에 불안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두려움. 그리고 진실이란 것에 대한 의심.

"울음은 올리브의 감정과 거리가 멀었다.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그녀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그리고 신부(수잔)가 크리스토퍼를 바라보며 정말 그를 안다는 듯이 방긋 웃을 때도 두려움을 느꼈다"(122)

아들의 결혼식에서 며느리 수잔의 거침없는 태도에서 올리브는 일종의 두려움을 느낀다. '네가 내 아들을 정말로 알고 있느냐? 무엇으로 안다는 것이냐? 이렇게 알지 못하고서도는 너는 어떤 이유로 이 결혼이 행복할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냐', 두려움은 바로 이 속내를 대변하는 감정일 것이다. 현재의 진심을 믿지 않는 올리브. 앎이 전제되지 않는 진심에는 의심의 구름이 가득한 올리브. 그래서 그녀는 친절하지 않다. 세상이 자신을 향하여 친절하지 않은데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게 친절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친절한 사람이 싫다. 남편 헨리와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불안은 올리브에게 숙명과도 같다. 불안은 통제를 발달시킨다. 긍정과 친절함은 불안이라는 갑옷에 가둬진다. 이것이 아들 크리스와도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갑옷 속에 감춘 올리브의 진심을 간간히 꺼내준다. <밀물>에서 케빈과 자살에 관한 부모 이야기를 하면서, 케빈과 함께 물에 빠지려는 패티를 구하면서 올리브의 내면의 마음이 흘러 나온다. <여행 바구니>에서 절망과 수치심에 허덕이는 말린의 절규를 깊은 동조를 한다.

올리브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역할 때문이다. 만약 내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올리브를 만났더라면 나는 올리브와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만난 올리브는 가슴으로부터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갖게 했다. 남편보다 짐 오케이시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짐에게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가 가닿지 못한 올리브의 마음, 그걸 읽는다. 아들이 이해하지 못한 올리브의 마음에 이르러 본다. 시기와 질투에 매몰된 데 스며있는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읽는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노년의 슬픔과 고독을 올리브와 함께 경험한다. 늙고 쳐진 피부에도 따뜻한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을 올리브를 통해서 인식한다.

4. 그래도 살아감에 관하여,,

소설 전체에서 구원의 이야기는 없다. 모두 고통스런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들에게 알맞은 정답이나 해결은 없다. 희망이랄 것, 쓸 데라는 것이 묘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은 불필요한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필요와 불필요를 나눌 것인가.

살아감이 중요하다. 생의 파도가 밀려올 때 그 파도를 타기도, 고꾸라지기도, 엎어지기도, 빠지기도 하면서, 생을 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말이다.

"그녀(올리브)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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