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내음, 먼 이름, 그림자, 하모니카, 함께. 작품집 <아버지>에 나오는 아버지를 기억, 또는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로 그들의 아버지가 저자들 각자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아버지 등에 업힌 저자의 모습, 가깝지 않았던 아버지의 존재, 먼 이름, 아련한 추억의 소리, 하모니카, 그리고 존재가 있는 곳엔 어디에나 드리우는 그림자. 그리고 고된 세월을 지나 '함께' 길을 걷는 존재, 아버지. 유일하게 살아계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다섯 편의 아버지 이야기이다.
이 키워드를 중심 삼아 나와 아버지는 어떤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게 가장 가까운 아버지는 <아버지의 등내음>의 아버지와 가깝다. 저자의 아버지가 그녀를 업고 산을 올랐을 때 느꼈던 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냄새, 그것은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안정이었고 행복이었을 것이다. 나이 들어 보면 작디 작은 아버지의 등이 그 때만큼은 넓디 넓은 평야처럼 풍요로웠을테니까. 정확히 그 느낌을 알 것만 같았다. 비록 저자처럼 어린 시절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등하교길을 아빠가 함께 해주었다. 그 때 아빠는 공직에서 퇴직을 하고 엄마와 함께 수퍼마켓을 꾸리셨는데, 오토바이로 나의 등하교길을 태워주셨다. 하루에 세번을 왔다 갔다 하는 날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심한 비염으로 고생할 때, 점심 시간에 병원 진료까지 그 오토바이로 나를 싣고 다니는 일을 귀찮다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등내음>을 읽으면서 그 때의 시간들이 떠올라, 다시 아빠의 등내음, 그 너른 아빠의 등, 엄마의 품과는 다른, 단단하면서도 바위 같이 안전했던 아빠의 등을 다시 회상할 수 있었다. 내가 결혼하고 전화드릴 때마다, 또는 친정에 갈 때마다 "내 사랑 선영이"이라고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아빠의 등내음은 내게도 깊은 추억이다. <아버지의 하모니카> 하모니카 하나로 그마나 연결되어 있었던 아버지. 죽어서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아버지. 설명할 수 없는 아버지의 부재가 가져다 준 절망적인 상황때문에 원망하고 미워했던 아버지가 마침내 눈 앞에 주검으로 나타났던 순간, 한 쪽 손이 잘려나간 아버지의 주검은 미움과 원망을 객관화하는 시점이 되었을 것이다. 비로서 나의 입장에서가 아닌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을 조명할 수 있었던 시간, 비록 서술된 인물이 완연히 다르긴 하지만 나는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김중미 작가의 <나의 동두천>이라는 소설이 소환되었다. 살았던 동네의 분위기, 그리고 술집에 나가는 여인의 손에 잡혀서 그나마의 작은 보살핌을 누렸던 소설의 주인공을 엿보면서 동두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구어진은 아버지의 장례식 앞에서 비로소 아버지를 대신한 소중한 인연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원망하다 잊어버려던 현재의 사람들, 의미없는 인생이라 여겼던 자신의 인생마저도 다시 의미를 찾는 시간이 바로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그래서 구어진은 아버지의 하모니카를 마침내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먼 이름>의 아버지, 아버지가 먼 이름으로 대변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면서도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이름인 지도 모르겠다. 60년대를 통과한 80년대, 90년대까지도 한국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그리 가깝지 않았던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을까. <먼 이름>이란 시점은 필연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데, 이런 시선이 아버지와 저자 사이를 매우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거리가 주는 인사이트를 충분히 건지고 있다. 그 거리 사이에서 느꼈던 저자의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가족관계, 아버지의 부재 이후에 나타난 가족들의 변화 등을 담담하게 서술해 가면서, 그 사이에서 벌어졌던 저자의 마음을 잘 견져서 독자에게 전달한다. 어쩌면 다섯 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사적인 글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사적인 글이지만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과 변이를 가장 세밀하게 표현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도움을 얻지 않을까 싶다. "이제야 더 뒤늦게 슬퍼하는 중이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저자의 내면 깊숙히 웅크리고 있었던 문제가 비로소 해결되었다는 안심을 하게 되었다. 대학 때 사별한 아버지를 이제 슬퍼하며 떠나 보낼 수 있어서, 저자가 비로소 마땅히 그랬어야 할 '슬픔의 주인'이 될 수 있어서, 그녀에게 찾아왔을 자유로움 때문에 나도 미소지었다. <함께 길을 걷다>는 유일하게 살아계신 아버지와 이야기다. 죽음 이후의 화해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있다. 이 글에도 아버지의 허물이 있고 저자의 허물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아버지와 회복의 함께함을 걷는 일을 우리 모두가 바랄 것인데, 이 글에는 이런 아버지와의 화해와 더불어 함께 걸어가는 삶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아버지가 군복무를 하시던 철원으로의 동행. 이 동행은 아버지와 아들, 두 존재에게 매우 큰 의미였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의 고향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빠가 늘상 읊조리시던 '황해도 율계면 신평리 74번지', 지금은 행정구역의 이름도 바뀌었을텐데도, 나는 어릴 적부터 아빠에게서 들은 아버지의 고향 주소를 잊지 못하고 있다. 아빠가 돌아가시더라도 통일이 된다면 반드시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보라고 했던 말씀. 언제 통일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만큼 아버지의 흔적은 자식에게도 매우 중한 것, 아버지의 젊음이 새겨져 있는 곳, 그곳에 대한 상상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도 일조한다. 철원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 분명하다."지금은 그냥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이 고백은 어쩌면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을 벗어난 고백일 수도 있겠다. 다만 인생을 같이 걷는 동반자로서의 아버지. 존재로서의 만남,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림자로 울다>, "아버지는 평생 혼자셨다"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가슴이 철커덩 내려 앉았다.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이 상상이 되었다. 그간 그림자 이야기를 한 두번 들었나. 수많은 간증에서 들었던 것처럼, 가정 폭력, 알코올중독, 도박 등등...이 많은 사연들이 자연스레 내 머리를 셋팅하면서 그 한 문장의 의미가 묵직하게 내려 앉았다. 그러나 저자의 그림자는 그저 부정적 의미의 그림자가 아니다. 할아버지가 한센병인이셨다는 아주 특별한 환경에서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버린(?) 할아버지의 보호자가 되면서부터 아버지의 그림자는 깊게 드리워진다. 그 그림자의 어둠이 너무나 깊고 깊어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데도, 저자는 기어코 어두움의 그림자에서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로 모든 것을 승화시킨다. 물론 그 여정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중학교 1학년 때는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말하지 못할 단어가 하나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다. '아버지'라고 하면 가슴이 아파 기도하지 못했다. 아버지라는 말은 내게 불행이었고 고통이었으며 아픔의 전부였다. 그래서 '하나님, 예수님, 주님'이라고만 했다.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은 너무 낯설고 아팠다. 아니 싫었다"(316p)이렇게 아픔이 되었던 '아버지'가, 그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둠을 벗어나 그늘을 만드는 선선한 그림자가 되기까지 저자의 생에 있었던 모든 고난과 수고와 눈물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타인의 생을 살리는 지금의 사역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