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는 한국 사회의 저출산의 이유와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두번째는 프랑스의 사례를 제시하고, 세번째 파트는 한국사회에 잇댈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내게도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장성한 대학생 아들이 둘씩이나 있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을 결혼시킬 생각을 하면 눈 앞이 캄캄하다. 주택 문제에서부터 이어 출생하게 될 자손들의 보육과 교육 문제까지, 어떻게 감당을 해야될 지, 앞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사례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분명한 사실은, 저출산을 극복하는 정책이란 출산,육아정책을 넘어서 주택정책이자 교육정책이고, 복지 정책이자 임금 정책이며, 여성정책이자 청년 정책이라는 것이다(356p)"라는 저자의 문장에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문제 제기와 이에 따른 정책 제시와 해결 방안을 읽으면서, 내게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정책이든지 그것은 필요를 따라서 도입된다기 보다는 의식의 변화에서부터 실현 가능성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가임여성 기준 1명도 미치지 못하는 0.78명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체감하기 어렵지 않다. 결혼 적령기 나이가 갈수록 많아지고, 결혼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은 많지 않다. 헬조선이라는 워딩이 나타내는 바, 홀몸 건사히기도 힘든 세상에 가족과 자손을 건사하며 산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함을 영리한 청년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청년 시절만 해도 결혼은 필수라는 인식이 팽배했건만 지금 청년들은 결혼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이견을 갖지 않는다. 연애는 할망정 결혼을 구지 선택하려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시대의 변화를 따라 내 아이들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겠다면 이를 강요할 의사는 없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결단코 개인의 자유의지의 긍정적 사용이라기 보다는 3포, 5포, 심지어 7포 세대니 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병폐로 인한 인식의 변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소멸하는 세대가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 다음 문장에 주목해 본다.
"결국, 올바른 사회란 배제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탈성장사회'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대안을 들 수 있다(348p)"
이 문장은 지금까지 우리는 성장을 가장 큰 가치로 삼아 왔으며 그 가치를 따라 고도성장을 이루어냈지만 이와 더불어 성장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을 양산해 왔다고 바꿔 말해도 되겠다. 그래서 저자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발걸음, 즉 탈성장사회로의 진보가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근접거리 경제 구축'과 더불어 생산의 목적을 상품의 가치 증대가 아니라 '사용가치'에 두어야한다,
둘째, 노동을 창조적인 자기실현으로 바꾸고,
셋째, 기업의 '계획적 진부화', 즉 계속적인 소비를 유발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제품을 생산하는 횡포를 없애기 위해 제품의 보증기간 의무를 늘리고 '수리할 권리'를 도입하는 것,
넷째,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를 줄이고
다섯째, 식품의 폐기를 방지할 것,
여섯째, '최고임금'정책의 모임(최저임금이 있듯이)으로 소득의 불평등 완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런 제안들은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전업주부로서, 여성의 입장에서 출산과 양육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를 들라고 한다면, 출산과 양육을 소모적인 행위로 보는 사회적 시각이 한 몫을 한다 싶다. 여성이 가정에서 전업주부로 살면서 살아가는 일들은 어느 것 하나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고도 성장사회는 무엇보다 경제적 가치, 노동의 경제적 환산을 제일의 가치로 둔다는 것을 의심할 이는 없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 대부분은 전업주부와 자녀들의 주양육자로 살아가는 일을 그리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라고 여길 수도 없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만 정체되어 있다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만약 가사노동와 양육에 시간과 노동의 질에 따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여 실제로 급여를 제공한다면 적어도 직장 여성의 절반은 사회적 역할보다는 가정의 역할을 선택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물론 정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이렇게 예상해보는 것은 직장생활을 자아실현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더러 소명의식이 없지는 않겠으나, 경제적 필요가 주효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주위에서 만나본 소시민들의 입장은 이러하다. 그러나 가족을 보살피고 자손을 위한 제일 양육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보람과 소명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급여를 제공해보자는 것이지 경제적 가치가 제1의 가치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분명 의식의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서 저자가 설명한 프랑스의 많은 정책 제안들 중에 나의 구미를 가장 당겼던 것은 '가족수당기금'이라는 기관이었다.
"프랑스 가족 정책의 주요 기관인 '가족수당기금'은 지역 주민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관련 육아 정보와 가족 생활 교육, 부모 교육, 가족 생활 전문 잡지를 발간하여 새로운 가족 문화의 창출에도 기여한다. 즉, '가족수당기금'은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사회문화적 지원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256p)"
"프랑스에서 가족수당이 자녀가 부양가족으로 머물러 있는 동안 지급되듯이...............아동수당이나 양육 수당을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연장하여, 프랑스처럼 자녀 양육을 아동의 생애주기에 따라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한 가족 내에서 부양하는 자녀 수에 따라 부모의 자녀 양육 부담도 다를 것이므로, 부양 자녀 수를 고려한 급여액의 차등화도 고려해야 한다. 한편 프랑스는 보육에 관한 수당도, 집단보육 또는 개별보육에 대한 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여 이에 따라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한국은 보육수당을 부모에게 직접 주지 않고 어린이집 보육료 지급카드로 보육료를 대신 부담하는 형태이다...프랑스는 자녀를 많이 나을수록 수당 혜택이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들은 저출산을 극복하고 출산율을 유지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258p)"
주부 급여가 아닌 자녀수당혜택만으로도 저출산 극복에 성공이 되었다니, 우리나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정책임이 분명하다. 프랑스 정책의 특징은 매우 다원화되어 있고 다양한 상황을 아우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랄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나라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발걸음은 결국 새로운 사회로의 진일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출산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인구에 자주 회자되듯이 이 위기를 새로운 사회, 저자가 말한 탈성장사회에서 탈출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발걸음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