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야곱읽기
zionesuh 2024/03/0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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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뎐
- 다니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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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 - 2024-01-30
: 163
치밀한 야곱 읽기, <야곱-뎐>을 읽고
성경은 한편 내러티브라고 들었다. 이야기라는 말이다. 성경 안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편집되어 있다. 그 어떤 삶도 그리 단순한 삶은 없다. 희노애락오욕의 서사들은 그저 나 하나의 단독자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나라들과 얽히고 섥혀있다. 그러나 성경의 내러티브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 그 속에 수많은 사정들과 우여곡절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은 마치 오롯이 독자의 상상의 몫인 것 같은 부담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내 맘대로 무작정 상상할 수도 없다. 이미 수천 년전에 쓰여진 서사를 현대인의 상상으로 풀어내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주는 격차가 너무나 크다. 상상이 필요하나 그 상상이 만들어내는 오역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은 공부해야 하는 책이라고 한다. 성경이 쓰여진 시대의 1차 독자의 눈에서 그 글들이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파헤치고 생각해보는 것은 성경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노력해야 한 부분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결단코 쉽지 않다.
<야곱-뎐>은 마치 이런 수고를 발 벗고 나서서 해주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책이다. 야곱이라는 인물 하나를 서술하는데 근 7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이라는 건 이 책의 저자나 야곱이라는 한 인생의 서사를 풀어내는데 얼마나 치열하고 세밀한 추적과 사유를 했는지를 알려주는 방증이다. 물론 창세기에서 야곱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분량은 작지 않다. 그렇더라도 그저 몇 장에 불과한 야곱의 이야기를 이토록 긴 분량의 책으로 서술했다는 것은 저자가 성경의 행간을 얼마나 꼼꼼히 읽었는지 그 수고의 흔적을 느끼고도 남음이 있다. 저자는 야곱의 삶의 행적을 통해 세 가지 유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 영적 '하자'를 판별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준이 된다는 것, 둘째, 구속사에 대한 더욱 풍성한 성경적 지식과 감동을 얻는다는 것, 셋째, 실생활에 적용하기에 유용하다는 점등을 부러 짚어주면서 이 책이 호용을 설명한다. 읽으면서 충분히 그럴만하다 싶었다.
요즘 엔도 슈샤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이 소설의 화자, 세바스티앙 로드리고가 배교자 지치지로의 밀고로 천주교를 탄압하는 일본 관리에게 잡히게 된다. 신도들의 순교를 목격한다. 고국 포루투칼에서 전해 듣기만 하던 순교의 소식을 눈 앞에서 지켜보면서 로드리고는 깊은 갈등을 경험한다.
"그가 혼란에 빠진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애꾸눈 신도가 순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뜰 안의 정적과 매미소리와 파리의 날개소리였다. 한 인간이 무참히 죽었는데도 바깥 세상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전과 다름없이 계속 움직이고 이었다. 이런 바보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순교란 말인가? ...........그분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이,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침묵>중에서.
한 생명이 죽었는데, 세상은 너무나 여전하고 하나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 로드리고는 분명 그분의 침묵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다. 나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난을 당할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경험할 때, 우리는 간절히 하나님을 구한다. 매달린다. 응답은 고사하고 세상이 너무나 평화롭고 일상적일 때, 나의 삶이 마치 유린 당한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할 때 그분의 침묵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수많은 응답을 주시기도 하면서 왜 결정적일 때 하나님은 침묵하실까. 그 침묵은 과연 무관심일까, 사랑일까.
야곱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저자는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개입하시는 싯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지체하시는 하나님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온갖 악명과 무지한 실수로 뒤범벅이 되어, 부족에게도 사회에서도 매장 당하고 버림 받은 야곱이었을 때, 그렇게 부서진 후에야 사람이 도저히 되살릴 수 없다고 선언할 상태가 되어서야(<야곱뎐, 105P) 비로소 하나님이 개입하신다고 한다.
"야곱의 삶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어떠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동행하며, 그들 인생에 어떻게 개입하시는지 자상하게 설명하는 메뉴얼이다. 그런데 그 메뉴얼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개입하신 내용만 담기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하고 개입하지 않으심으로 분명한 메세지를 주시기도 한다(107P)"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무관심이나 유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안전망 안에서 실수를 허용하시는 하나님임을,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분임을 설명한다. 실수나 잘못된 선택에 즉각 개입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체하시는 하나님을 얘기한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강점과 좋은 점만을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약점과 허물까지도 사용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속이는 자였던 야곱이 자신도 속임을 받는 자가 되어 험한 세월을 지내고, 자손들을 통하여 받은 괴로움까지, 야곱은 쓴뿌리의 열매를 먹고 마시는 자였지만, 끝내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세우셨다. 저자는 아곱의 여정, 야곱의 삶의 순간 순간에 직면한 사건들을세심한 자료와 해석으로 하나씩 하나씩 풀어간다. 그리고 야곱의 삶이 구속사와 어떤 연결이 있는지까지 면밀하게 써내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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