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흐르는 물을 닮은 책
dlwsnsj666 2023/06/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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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구아 비바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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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 - 2023-06-20
: 2,902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가고 있다.”
이 책은 목적지 없이 그저 앞으로 흐른다.
“내가 여기서 당신에게 쓰는 것은 하나의 회로도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 그저 지금인 것.”
그리고 ‘흐름’은 언제나 현재성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직 “지금-순간”만이 있다. 그리하여 ‘아구아 비바’라는 제목은 탁월하다. 제목을 직역하면 ‘살아 있는 물’이다. 구체적인 형태도, 목적도 없이 그저 순간순간을 콸콸 흐르는 물. 이 책은 살아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는 경험이자 살아 흐르는 물 그 자체다.
책 속 화자는 내내 “지금-순간”을, “있음”을 붙잡고 싶어 한다. 그러나 순간은 순간일 뿐이다. 매 순간은 바로 그다음 순간으로 흘러가버리니까. 그러므로 이 책 속 문장들은 모두 ”기차 창문으로 내다본 선로처럼 달아나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빠르게 달아나는 순간들을 붙잡으려 애쓴 흔적들, 혹은 그러한 순간들로부터 느낀 설명 불가한 감정들을 ’당신‘에게 전하려 애쓴 흔적들이다. 그래서 어떠한 스토리도, 구조도 없는 이 글 가운데 그러나 선명하게 읽히는 것들이 분명 있다.
먼저, 나를 울린 문장이 있다. ”나, 단 한 번도 탐탁지 못했던 인간.“ 살면서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향해 고개 끄덕여주지 않았음을 말하는 이 문장이 너무 아팠다. 아니나 다를까, 화자는 자신이 먼 고통에서부터 왔다고 말한다. 인간의 조건에 신물이 났으며 자신의 조건을 의식하지 못하는 동물들이 부럽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어둠 속을 걸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과정 역시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산고“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될 수 있는 한 넓게 늘어나는 거니까.“ 그리고 그 고통으로부터 ”그것“이 태어나니까.
신기하게도 스토리 없는 이 스토리에도 분명한 클라이맥스가 있다고 느꼈는데 책의 극 후반부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고통 끝에 얻을 수 있었던 ”그것“의 정체가 밝혀지는 곳. “그것”은 그가 “은총의 행복”, 혹은 “지복”이라고 일컫는 상태다. 그 상태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생각하고 있는 줄 모르는 상태다. 생각이 생각이라는 행위에서 자유로운 상태. 비어있으면서도 충만한 상태. 그 상태는 선잠에 들어 ‘생각’과 ‘꿈-상상’의 중간 단계에 머무르는 때와 비슷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화자는 모든 것들의 ’너머‘에 머무를 수 있는 그 초현실적 상태에서 가장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도 순간일 뿐이어서 또 지나가버릴 것이다. 순간은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화자는 말한다. 대신 순간순간에 투항하자고. 순간들에 온몸을 맡긴 채 살아가자고. 그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떻게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오직 걸어야만 걷는 법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살아가다 보면 이룰 수 있다고. 그러면 우리가 ”지금-여기“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있다”는 사실, 나는 여기에 나로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또한 우리가 살아있는 한 “지금-순간”은 흐르는 물처럼 거듭나며 계속되므로, 우리는 매 순간 거듭 태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떠나가는 순간을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은 ‘당신’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것이며 그래서 불친절하다고 거듭 말하지만 적어도 내겐 이 책이 참 친절하게 다가왔다. 엘렌 식수의 말마따나 어쨌든 이 책은 “화자가 ’당신‘을 향해 글을 쓰고 있다”라고 요약할 수 있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즉 독자인 우리를 향해. 그리고 결국은 우리 모두 순간에 기뻐하자고 소리치니까. (책의 후반에 이르자 ‘Viva’의 다른 뜻—‘만세’가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책이 계속해서 ‘지금’을, ‘있음’을 강조해 주는 덕에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 존재가 과거에 잡아먹히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잠식당하려 할 때, 이 책을 집을 것 같다. 과거나 미래에 잡아먹히지 않는 ’현재‘의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북돋워 주는 이 책은 나에겐 더없이 따뜻한 책이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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