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의 핵심을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면서,동시에 사회 전반을 이론과 여러 데이터에 기초하여 깊이 있게 파고든다. 특히 3장 경제에 관한 분석 파트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신고전학파의 시작부터 진화의 개념을 잘못 차용했으며, 한계효용의 체감 없이 무한히 욕망하는 생물학적 인간을 경제학은 포착하지 못한다 지적한다. 나아가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글로벌 대기업의 행태를 고발하고 사회에 기여한 가치를 기준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사상적 관점까지 펼친다. 현 체제를 정당화하는데 끊임없이 악용되어온 진화생물학의 그림자를 자신의 연구분야임에도 똑바로 직시하며 거부하는 학자로서의 꼿꼿한 태도가 돋보인다.
그러나 한계점도 존재하는데, 이 책만의 한계라기보다는 진화유전학 자체에 내재하는 한계로 보인다. 진화생물학은 결국엔 공허한 도덕적 교훈 한 줄로 요약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자연적 본성이 이렇게 악함에도 불구하고, 도덕을 지향하자고. 그렇다면 온갖 데이터들을 통해 이기적 유전자라는 인간의 민낯을 까발리는 작업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오히려 인간이 이타적인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저자도 6장에서 종교의 가르침에 의존하듯 또다른 지향점이 요청되는 것은 아닐까.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있어야만 한다는 이반 카라마조프의 고뇌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또한 성서를 유전학에 맞추어 조금은 자의적으로 인용하여 해석하는 지점들이 보인다. 그 중 위험하다고 여겨질 만한 부분은 성서가 궁극적으로 인간을 생물학적 죽음으로부터 해방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을 여러 질병의 고통에서 구출하는 것은 분명 성서도 동의할 위대한 휴머니즘의 실천이나, 죽음도 유전자의 농간일 뿐이므로 이를 정복하자는 것은 불멸을 얻어 신이 되려는 인간의 욕망을 신학적,과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인간은 불멸을 얻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아닐까.저자 스스로 책 내내 인간의 진화적 본성의 민낯을 까발리지 않았던가. 인간에게 불멸을 안기자는 주장은 저자가 그토록 기피해온 인간에 대한 낭만적인 시각이며,고삐 풀린 트랜스휴머니즘의 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