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이며, 음악가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선 입술만 움찔거렸던 경험이 있다.
분명 평소에 클래식 음악과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하였는데,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 있기에 그림 속의 내용을 참작하여 유추해 낼 수라도 있다하지만 음악은 단순히 들려오는 선율로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왕왕했다. 어느 자곡가의 어떤 곡이란 것을 인지 하지 않더라도 내 기분이 좋아지고 힐링되면 그 뿐이었다. 사실 암기로 음악을 접한다는 것부터 부담스러웠고, 작곡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곡의 이름을 외우기도, 악장이 끝나는 것을 알아차림하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클래식을 주제로 하는 책들을 읽으면 그림이나 문학작품 처럼 아는 만큼 보이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 관련된 책들을 읽어 보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작곡가의 생애나 배경지식에 대한 설명이 위주였고, 곡에 대한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곡과 연관지어 배우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곡가와 곡명 따로 음악 따로 일치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냥 들어서 좋으면 그만이지 하는 상황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이 눈길을 끌긴 하였지만 이 책 또한 예전의 그런 책들과 별반 다를 바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쳐지나갈 뻔했다.
그런데 주어진 목자에서 보여지는 열두 곡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소 알고 싶었던 곡도 있었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곡도 있었고, 낯선 곡도 있었지만 너무도 재밌을 것 같았다.
굳이 음악과 연관되지 않더라도 음악가와 곡의 배경설명을 읽는 것만으로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책날개에 있는 QR코드는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 귀에 들려올 음악까지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 QR코드는 다울림카페로 연결해 주고, 카페에서는 각 장에 소개된 클래식 음악 듣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책에서 설명된 악장의 선율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그 선율만 반복 재생하여 들을 수 있게 해 주고, 각 악장의 전체를 들을 수 있는 유튜브연주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매번 책을 읽으면서 곡과 내용이 연결되지 않은 그 부분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이 장치가 참으로 고마웠다.
책의 구성은 앞부분에서는 배경이야기를, 뒷부분에서는 곡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한 더 알아보기를 통해 작곡가나 곡에 대한 배경지식을 더 보충해 주고 있다.
첫번째 작품으로 등장한 차이콥스키의 비창에 관련된 부분을 읽으며 이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싶었던 이야기였다. 특히나 차이콥스키의 사인이 동성애 때문이란 내용을 어디선가 보았었는데, 더 알아보기에서 이런 작품 외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면 그가 말한 이 교양곡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문장이 뜨끔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차이콥스키의 비창을 알았고, 그와 관련된 배경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비창이 어떤 음악이었는지 전혀 알아차리질 못했다. 곡을 들으면서도 유명했던 부분 외에는 이 곡이 비창인지도 알지 못했다.
곡을 공부로 받아들일 목적으로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그리그의 페르귄트 부분이었다. 입센의 작품 페르귄트 보다 그리그의 페르귄트를 좋아해서 자주 듣곤 하였는데, 그 음악으로만 작품의 내용을 유추해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입센의 <페르귄트>를 읽었었다. 희곡으로 된 작품이기에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페르귄트>작품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리그의 페르귄트를 이해하고픈 목적으로 읽었던 것이었는데, 음악을 틀어놓고 작품을 읽는다 하더라도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이 나의 막막했던 상황을 단숨에 해결해 주었다. 작품의 내용과 곡의 부분을 연결시켜 음원으로 제공하여 이해시켜주는 과정이 너무도 좋았다. 직접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바람도 있었지만 욕심은 조용히 내려놓기로 하였다.
클래식하면 문학도 있고 그림도 있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음악이 대표적으로 생각나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클래식 음악이다. 하지만 음악을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문학작품도, 미술도 두루두루 배경설명으로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기 떄문에 음악에만 국한된 책은 아니다.
수록된 열두곡의 내용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어느 정도 클래식 좀 안다고 난체 할 수 있을 것 같다.
뭐 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지적 허세도 삶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나에게 다시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이며 화가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거림 없이, 그리그의 페르귄트와 페르난도 보테로라고 대답할 것이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