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이와 함께 그림책 읽는 시간을 고를 것이다.
책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녀석이었지만 그림 읽어내는 힘이 끝내주는 녀석이라 그림책을 보면서도 글자에 집착하는 엄마를 그림의 세계로 끌고 와 주는 매력적인 아이였다.
그림책의 매력은 그렇게 아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제대로 읽고자 하면 아주 두꺼운 성인 책보다 더 깊은 인생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도 많아 이제 더이상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이가 성장하고 책장은 책들로 가득차서 우선순위로는 이제는 읽지 않을 법한 그림책들이 자리를 비워줘야하건만, 한 권 한 권 그림책 속에 담고 있는 그 깊이를 알기에 선뜻 내놓기 위한 손이 가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저자의 작품인 <레베카의 작은 극장>은 한치의 주저거림 없이 책장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집에 있는 책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새 그림책에 눈길을 주지 말아야지 하였지만 레베카 도트르메르 작품이란 것만으로도 <자코미누스>를 스쳐 지나갈 수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하는 빅북의 형태에, 따뜻한 그림, 성인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책소개, 게다가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자코미누스란 책 제목과 더불어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란 부제까지 어느 것 하나 끌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제는 성적을 위한 독서에 삭막한 시간을 보내야만 할 아이지만 아주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행복했던 그 시간 그림책 읽는 놀이를 하고 싶어 아이의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렸었다.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는 예전의 그 꼬맹이가 아니였고, 하나하나 짚어주며 그림을 읽어주는 아이는 사라졌다. 그저 숨가쁘게 달리듯이 글자를 읽어대는 엄마만 있었다.

첫장을 넘겨보고 화들짝 놀랐다.
수많은 등장인물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로 가득찬 이 번호들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예전 같으면 인물 하나하나 짚어가며 누굴까 상상의 나래도 펼쳐봤겠지만 그랬다가는 아이가 박차고 일어날 것 같아 서둘러 한 장을 넘겼다.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들, 그리고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찾아보기에 맨 앞페이지의 이 그림은 너무도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 이야기에 몰입하기에도 좋아 어린 아이들과 읽기에 정말 좋은 구성이라 생각되었다.
자코미누스는 과연 누굴까, 어디에 있을까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였고, 다 큰 아이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도 효과적이었다.

이 책은 자코미누스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태어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 날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아이를 낳고 돌잡이 하면서 남편은 아이가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처럼 보통, 평범이란 일상적인 삶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자코미누스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들인지 공감하게 된다.
다리를 다친 다코미누스를 달래주는 베아트릭스 할머니의 말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리를 다쳤던 아이가 깁스를 하였을 때 호들갑 떨며 걱정하던 나의 불안정했던 모습이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엄마랑 책을 읽는 것이 아닌 엄마를 위해 같이 책 읽어주는 시늉을 하는 것 같았던 아이는 꼬맹이적 집중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커진 티를 내는 듯 금새 내용과 담긴 의미를 파악하며 나에게 주절거려줬다. 엄마처럼 철학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이 입을 통해 나오는 모든 언어가 철학이었기에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
게다가 이 그림이 너무도 맘에 든다며 탭으로 쑥싹 그림을 그려 선물해 주었다.
<자코미누스> 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 그린 아이의 작품이다.
자랑삼아 올려본다. ^^;;;

숫자로 나타낸 자코미누스의 풍요로운 시간들, 그리고 뒷장에 성장한 등장인물들을 찾아보는 색다른 재미가 듬뿍 담겨있다.
글의 내용도 좋지만 그림이 너무 좋아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봤음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