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유재영이 장르적 상상력으로 곰곰 생각한 서른 편의 SF 영화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객석이라는 한 줄 공간에서 만났던 세계를 작가가 선택한 한 줄 대사에서도 만나보세요.
우리는 체념하는 종족이니까요
체념에는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한다’는 뜻도 있지만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후자에 가까운 ‘할 수 없지. 하는 데까진 해보고’식의 체념이라면 잘 단련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후회를 끔찍이 싫어합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단단한 벽에 막혔던 경험이 그런 상황을 아예 만들지 말자는 다짐으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후회와 후폭풍, 그러니까 무력감과 수치심 사이 어디쯤에 놓인 그 느낌에 취약한 이들이 답을 찾는 법은 조금 독특합니다. 가령 시험을 치를 때 헷갈리거나 모르는 문제를 맞닥뜨리면 언제나 후회가 남지 않는 번호를 택하죠. 객관식일 때만 가능한 방법은 아닙니다. 수업이나 교과서에서 듣고 읽은 답에 가깝다고 유추되는 쪽을 고르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끌리는 답, 맘을 강렬하게 움켜쥔 쪽을 취한다는 것이죠. 맞으면 맞은 대로, 틀리면 틀린 대로 결과에 만족합니다. 만족한다기보단 결과를 뛰어넘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 대신 진짜 문제를 복기하고 개선하는 데 에너지를 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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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에는 도리를 깨닫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 행성은 틀렸으니 다음 행성에 기대를 거는 이들에게는 체념이야말로 귀한 자산이 되는 셈이죠. 하지만 ‘안 되면 말고’의 자세에도 마지노선은 있습니다. 플랜 B, C, D를 상상할 수 없을 때, 그리고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기댈 곳이 없을 때는 곤란해집니다. 터전, 그러니까 비빌 언덕 없이는 체념도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터전을 마련하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많은 시간을 씁니다. 빼앗긴 터전을 되찾아오려고 일평생 투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때 터전은 생활의 근거지이자 국가, 세계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다만 지구 단위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지요. 이웃한 도시에 싱크홀이 생겨나고,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발생해도 지구가 어떻게 될 거라는 상상은 도통 생겨나지 않거든요. 말하자면 인류에게 지구는 생활의 근거지, 비빌 언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구가 오염되어 수십 년 안에 끝장날 위기라면 어떨까요. 이 행성에는 더는 돌아갈 곳이 없으니 무조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면 말이죠. 저도 한때 한국이 싫어서 이민을 꿈꾼 적은 있으나 지구가 아닌 곳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달이나 화성에 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니까요. 그곳은 인간이 살 만한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주선 조종사이자 엔지니어이자 옥수수 농장주 조셉 쿠퍼의 말에 귀 기울일만합니다. 그는 체념하는 인간입니다. 체념하는 인간은 솔직하고, 언제나 플랜 이후를 떠올릴 줄 압니다. ‘할 수 없지. 하는 데까지 해보고’의 심정으로 말이지요. 쿠퍼는 체념한 채 답을 찾을 것이고, 우리는 우주로 나갈 겁니다. 쿠퍼의 말대로 이 세상은 보물이지만 우리에게 잠시 나가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이렇게 도리를 깨닫기로 합니다.
<<한 줄도 좋다, SF 영화-이 우주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는 다양한 예술이 전하는 한 줄의 의미를 마음에 새겨보는 에세이 시리즈, '한줄도좋다'의 3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