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의식의 흐름대로 ‘시선 강간’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책을 한창 읽는 와중에 한 여성이 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추락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죠. 정신 건강을 위해 뉴스 댓글을 잘 안 읽으려 하는데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 사건에 대해 말하게 되었고 어떤 남성이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드도 보고 운이 좋았네’라는 뉘앙스의 댓글을 쓴 걸 보았다고 합니다. 그렇네요. ‘불편한 시선’은 비단 예술에만 적용되는 일은 아닌 것을.
책의 제목인 ‘불편한 시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2천 년 전부터 아주 꾸준히, 아주 쉬지도 않고 여성들이 받아온 불편한 시선과 2천 년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에서야 ‘불편한 시선’을 의식하고 타파하고자 하는 여성의 ‘불편한 시선’, 후자의 시선이 불편한 건 지금까지 불편한 시선을 던진 남성들이 대부분이겠죠? 왜냐! 전 그 시선이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요!!!
서양에선 게릴라 걸스와 린다 노클린 이후 많은 이들이 남성이 주류를 이룬 미술계(안 그런 분야를 찾기 더 힘들지만)에서 여성이 어떻게 배제되고 소비되어 왔는지 연구해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그런 시도가 매우 활발합니다. 당장에 제가 읽은 대중서만 해도 열 권 정도 되니까요.
‘불편한 시선’은 이화여대에서 ‘여성과 예술’ 과목으로 오랜 시간 강의를 해온 저자가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의 열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미술사를 잘게 쪼개고 재조립해나가는 책입니다. 읽는 도중에 화나서 침대 위에 책을 몇 번이나 던졌는지 ㅎㅎ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장점이지만 가장 큰 미덕을 꼽자면, 알지 못했던 많은 여성 예술가와 만났다는 점이겠죠. 여성 중에서 뛰어난 예술가가 아닌, 성별을 떠나 뛰어난 여성 예술가들을요. ‘불편한 시선’을 통해 알게 된 예술가들을 더 공부하고 싶어졌는데... 이렇게 바빠서야 원... 깊게 파고드는 건 좀 미루고 한동안은 ‘불편한 시선’을 곁에 두고 자주 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출판사 인스타그램 이벤트를 통해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