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는 여지것 살아온 세상과는 분명 다른 세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우리는 거부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중심에 있다.
시대가 변했지만 교회는 그 변화를
못따라간다는데에 문제가 있다. 즉 문화적 지체현상이 심각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목회자들의 고민은 어떻게 해야 이 시대를 이끌어
갈 것이가하는 점이다. 그러나 실상은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따라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이러한 시대에 대해 교회는 두 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다. 하나는 목회자들이 교회는 세상을 따라가는 곳이 아니라는 이유를 대고 교회만의 성을 쌓고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세상과 고립되어 죽을 확률이 더 많아 보인다. 다른 하나는 다가오는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에 맞는 길을 찾아서 교회를
갱신하여 새롭게 목회를 하는 것이다.
그 길을 찾기 위한 적합한 책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후자를 목적으로 삼고 고민하는 목회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미래를 읽는 힘이 있고, 미래에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Postmodern Pilgrims”이다. 이를 번역하면, “포스트모던시대의 순례자”쯤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미래에 어떻게 목회를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자극적인 통찰을 준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EPIC의 시대라고 한다. EPIC의 뜻은
경험(Experiential), 참여(Participatory), 이미지(Image-driven), 관계(Connected) 중심의 문화를
말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면서 정주하거나 정착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순례하며 교회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중 청취’(double listening)를 하라고 한다.
이중 청취란 한 귀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한 귀로는 하나님의 세계에 귀기울인다는 뜻이다. 이중청취를 바탕으로 미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성경에 기초하고 문화에 상응하는 목회를 위해 EPIC모델을 소개한다. 경험(Experiential), 참여(Participatory),
이미지(Image-driven), 관계(Connected)이다. 21세기의 교회는 예산과 건물로 성공 여부를 측정해서는 안되고, 1세기의
교회처럼 창조성과 상상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며 감당해야 할 문화는 어떤 문화인가 하면,
1)
성경을 믿는 교회에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 찬 문화 속에서,
2) 영혼 구원을 핵심으로 여기는 교회에 영혼 구원을 개인적으로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 들이 가득 찬 문화 속에서,
3) 소비주의가 제일 종교가 된 문화 속에서,
4) 디팩 초프라(대중
영성학자), 오프라 윈프리(주부대상 토크쇼 진행자)의 말이 모세, 모하 메드, 예수님보다 더욱 권위있는 문화 속에서,
5) 성경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 이상 제공해 주지 못하는 문화 속에서,
과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저자의 물음이며,
이 책은 이 물음의 해답이다.
먼저 서론의 제목이 ‘키스하고 말하라’이다. 저자는 키스를 접촉이라고 비유한다. 문제는 현대 사회의
문화는 접촉하지 않고 작동하게 하는 ‘무접촉의 문화’라고 한다. 그러나 접촉하지 못하는 사람의 정서나 감정은 병들기 마련이기에 교회는 접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접촉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 역시 가난한 자, 불상한 자, 죄인과 접촉해서 치유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회는 ‘접촉의 교회’이다. 기독교는 접촉의 문화이며 촉감의 종교이다. 성경적인 영성은 접촉이라고 말한다.
1장, 경험하고 느끼는
교회
저자가 보기에 서구 기독교는 이성과 간찰의 신들의 지배를 받는 현대라는 세계 속에서 잠들어버렸다고 말한다. 현대는 EPIC의
위기이다. 앞으로 교회가 EPIC의 방향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교회는 지나간 문화의 잔재로 전락할 것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삶을 알고
싶어한다. 포스트모던인들은 삶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싶어한다. 중세 신학자인 아퀴나스는 말년에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자기가 지금가지 쓴 글은 모두 지푸라기라고 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해보게 한다. 그 이유는 포스트모던인들은 자기가 직접 경험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험할 때에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는
것이 포스트모던인들이다.
그럼 교회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예배가 사람들로 하여금 강렬하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교회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현대 교회 역시 계몽주의 산물이다. 즉 합리적인 이성에 호소하고, 이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교회는
예배를 통해 총체적인 경험을 맛보게 해야한다. 그는 “목회자는 시대에 관해 설교하도록 부름받은 거시 아니라 시대를 향해 영원한 나라에 대해
설교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던인들은 경험에 굶주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성이나 신비를 추구한다. 현대인들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하지만, 포스트모던인들은 영성과 신비를 추구한다. 영성이나 신비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2장. 참여하고 상호 작용하는 교회
미국의 경매 사이트 이베이가 성공하는 이유는 구매자가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이전에 모든 거래는 생산자가 결정했지만, 전자상거래는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결정된다. 포스트모던인들이 멀티미디어 게임에 집중하는 것은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게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수 백명이 함께 대화하며 상호 참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호 참여가 포스트모던인들의
두 번째 특징이다. 포스트모던 문화는 상호 참여의 문화이고, 이는 선택하는 문화이다.
교회도 ‘우리는 설교하고 당신들은 듣는다’는 방식에서
모든 회중들이 ka여하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 직업 목사와 의자에 앉아 있는 평신도는 없다. 오직 평신도 지도자를 움직이게 하고 그들이
직접 목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목사만이 존재한다. 모든 ‘참여자’는 전임 동역자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예배도 몸으로 드린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오순절 교회들이 부흥한다. 그들은 움직이는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3장 이미지와 은유로 사고하는 교회
신학자들은
이성과 질서를 종교의 핵심에 놓으면서 지적인 신앙을 창조하려고 했다. 신비와 은유는 지나치게 불명료하고, 모호하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그러나
점점 세계는 이야기와 은유가 핵심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미지는 이미 세계 언어이다. 이미지를 보고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 코카콜라는 재료나
가격에 경쟁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이미 세계 최고의 음료수이다. 이미지는 이제 세계를 지배하는 화두이다. 저자는 “은유는 사고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예배를 통해 우리는 사용하는 은유를 그리스도께로 연결시키고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교회는 회중들을 대중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이미지의 지배를 받는 건전한 이미지를 만들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다.
현대의
대중문화나 영화나 비디오 게임이나 인터넷에서 파는 것은 이미지이다. 그들이 파는 것은 폭력, 포르노와 같은 저열한 문화의 이미지이다. 교회는
이런 이미지에 대항해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4. 관계가 살아있는 공동체를 세우는
교회
미국에서 인테넷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채팅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자신이
어딘가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인터넷에는 관계를 갖게한다. 자기 말을 들어 줄 친구를 찾을 수 있다. 포스트모던인들은 마우스로 말하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나’는 존재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하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회는 ‘관계’와 ‘관계성’을
포스트모던 상황에 적합하도록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분산되고 복합성을 띄어야 한다. 즉 선(line)의 조직이 아니라
네트워크(network)의 조직이다. 즉 작고 개별적인 셀 그룹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스트리텔링이다.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봉사와 사회개혁에 참여하는 예배를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는 구세계 교회와 신세계교회로 나뉘어 진다. 구세계 교회는 현재 문화 안에서 변화시킬 것이 없다고 믿던가, 아니면
문화와 분리된 방식으로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규모를 우상화한다. 그러나 신세계 교회는 세상 안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교회는 규모가 아닌 속도에 성공의 모범을 둔다. 신세계 교회는 인쇄 시대가 끝났음을 말한다. 그 대신 웹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와 나의 마우스는 주님을 섬긴다”.
포스트모던 순례자들은 새로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다만 영원한 진리를 새로운 눈으로 보려고
한다. EPIC 방법론을 만드는 세 가지 학문은 포스트모던 해석학, 자연과학, 인지 연구이다. 해석학은 지금까지는 이성과 합리적인 것으로
객관성을 추구했지만,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해석학은 ‘참여-관찰자적’인 해석학을 사용한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포스트모던한 교회는
필연적이며, 앞으로 교회는 EPIC방법론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결국 그릇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안에 복음만 가지고 있으면 되지, 어떤 그릇을 사용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순례자들에게 맞는 목회와 교회관의 정립을
이 책은 촉구한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 우리의 교회는 이 책의 이론이 빠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빠르지 않다. 지금
우리 교회들은 아직도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둔감하다. 시대에 맞추어 교회를 갱신하자. 이 책은 EPIC 모델을 통해 교회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도 복음을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세상에 전하며, 교회가 소금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책이다. 목회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