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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etmemory님의 서재
  • 작은 빛을 따라서
  • 권여름
  • 14,220원 (10%790)
  • 2023-10-27
  • : 3,318

<작은 빛을 따라서>라는 제목이 예뻤다.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와 언제 우리의 뒤통수를 치며 들이닥칠지 모르는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삶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희망이 담긴 이야기를 기대하며 읽었다.

이 소설을 처음 쓸 때, 제목 아래 한 문장을 쓰고 집필을 시작했다.

'실패의 순간에 도사리는 성공의 순간들.'

우리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얻고 성장하며 변모한다. 이를 종종 잊기에 나는 이야기로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p.262. 작가의 말 중에서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읽으며 이 제목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적절하게 담아내는 예쁜 제목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라는 장편소설로 2021년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권여름 작가님은, 실패의 순간에 도사리고 있는 성공의 순간들, 어려움 속에서도 기어이 내딛는 한 걸음걸음. 그것들이 '작은 빛'이 되어 우리를 이끌고 있음을 말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 책에는 화자인 중학교 3학년 은동, 집안일을 책임지는 할머니, 슈퍼를 운영하는 부모님, 고등학생 언니, 동생 은율이 등장한다. IMF의 등장과 대형마트의 연이은 개점, 외국계 대형마트 입점 소식과 같은 위기 속에서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필성슈퍼'를 지키기 위해 3대 가족은 고군분투한다. 서명활동과 투쟁으로 외국계 대형마트의 입점을 저지하기도 하고, 두부 한 모마저 배달해 주는 차별화된 영업전략으로 정정당당하게 이웃 마트와 경쟁을 하기도 한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슈퍼지만, 필성슈퍼가 위기에 처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모여 다양한 방안을 짜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 가족 전체의 '간절함'이 담긴 슈퍼는 외부의 파도에 쉽게 흔들릴지언정 마냥 휩쓸리지는 않았다.

이는 쉬이 나아지지 않는 한글 실력에도 굴하지 않고 공부를 이어가는 할머니도, 할머니께 한글을 가르쳐드리면서 받은 용돈으로 연기학원을 다니며 배우의 꿈을 키우는 은동도, 마찬가지다.

흔들릴지언정 휩쓸리지 않는 간절한 마음.

나는 우리 가족을 떠올렸다.

장애를 가지게 된 후, 다시 일어서는 엄마의 간절함과 성실함을 보며 마음과 손길을 보태지 않기란 어렵다. (물론 뒷전에 물러나있는 가족도 있는 법이다.)

나, 그리고 아빠와 동생은 엄마가 열심히 하시는 만큼, 또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셨던 만큼 이젠 우리가 돌려드릴 차례라는 마음으로 엄마를 지원해왔다. 지칠 땐 서로 상처 주기도 하지만 알고 있다. 우리가 함께 도달해야 할 지점을. 우리의 마음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는 것을.

그리고 아빠도, 동생도 나도, 엄마의 조력자만이 아닌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 속에 흔들리고 넘어질지언정 휩쓸려 사라지지 않는 우리의 마음.

은동네 가족과 필성슈퍼의 이야기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오늘도 나아가는 중인 모두의 이야기였다.

내가 발하는 작은 빛이 누군가에게 길이 되고, 우리가 발하는 작은 빛들의 합이 더 큰 빛이 필요한 자리에 가닿는 상상을 해본다.

그 누구보다 나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친구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말로만 떠들 때, 나는 움직였다. 가끔 온몸이 너무 뜨거워져서 열정이 조금은 사라져도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그런 아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p.24

손님이 찾아오지 않아도 문을 여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새벽 여섯시 차가운 셔터 끝을 잡아 힘차게 올리는 아빠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여는 시간 여섯시, 닫는 시간 열두시는 법으로 정한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시간이었고, 우리 슈퍼만의 신성한 약속이었다.

p.170

엄마와 아빠는 슈퍼가 심란한 일을 겪을 때마다 청소를 하고 뭔가를 궁리했다. 지금도 그렇다. 다시 이기기 위해 전략을 짜고 때론 종목을 바꾸며 변신했다. 외부의 파도에 쉽게 흔들렸지만 마냥 휩쓸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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