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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etmemory님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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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엇 페이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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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3
  • : 2,341

1. 엘리엇 페이지, 그리고 '몰라서' 가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

영화 <주노>의 앳된 배우 '엘리엇 페이지'가 어느 날 남자가 되어 나타났을 때 나는 굉--장히 놀랐다.

여성스럽기 그지없어 보이던 유명한 배우가 트랜스 남성이라니!!

트랜스 남성으로 배우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일견 멋있다 여겨졌는데, 언제나 보이는 것은 지극히 일부일 뿐. 그가 지금의 모습이기까지 짐작조차 못할 어려움이 있었을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다. 그가 퀴어로 살아오며 가졌던 생각, 겪었던 어려움들, 그가 속한 사회는 그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지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다.

나는 퀴어를 떠올리는 마음이 아직 물 흐르듯 편안하지는 않은 사람이다. 선명하게 이해되지는 않는 어떤 영역이지만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 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경계 같은 것들이 나의 '무지'때문일까 봐 조심스럽고 움츠러드는 마음이 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성인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오는 어느 북토크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긴장이 됐던 것처럼. 특수교사라 장애와 가깝다 생각하면서도 늘 다양한 장애를 가진 초등학생들만 대하다 보니, 성인 척수장애인, 성인기 뇌병변 장애인에 대해 내가 미처 모르는 부분이 있어 실수할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과 더불어 비장애인이 주류인 세상 속에 주류로 자리하다가 일순간 비주류로 전환되는 듯한 느낌에 대한 생경함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알아가자는 마음으로 서평단을 신청하게 되었다.

2. To Exist as Myself. 당당하게 나로 존재하고 싶다는 의지!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 굉장히 강렬한 느낌이었다. 빨간 표지, 노란 세로 띠지, 선명한 필체. 서점에 가면 멀리서도 평대에 있는 이 책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에너지를 가졌다. 표지 정중앙에 자리한 엘리엇 페이지는 살짝 내려다보는 듯 정면을 응시하는데 그 눈빛이 무심한 듯 고요하다. 더는 사회가 뭐라고 떠들던 동요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이 느껴진다.

29장에 걸친 그의 이야기는 시간을 넘나들며 배치되어 있지만 최선을 다해 순간을 길어올리려는 엘리엇 페이지의 노력 덕분인지 아주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읽다 보면 나도 같이 마음이 힘들다. 이런 솔직한 글, 가끔을 너무 솔직해서 놀라운 글을 읽고 있으면 자신을 회고하는 글을 쓸 때 사람은 얼마나,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솔직한 글쓰기를 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3. 책 속의 문장, 나의 이야기​

세상은 우리가 트랜스가 아니라 정신병자라고 말한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내 신체를 훼손했다고, 나는 영영 여성일 것이라고 말하며 내 몸을 나치의 실험에 비유한다. 병에 시달리는 것은 트랜스가 아니라 이런 혐오를 길어내는 사회다. 배우이자 작가 젠 리처즈는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 10년 전에 트랜지션을 한 뒤,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건강하며, 친구와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더 나은, 더 참여하는 시민으로 살고, 그뿐 아니라 더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다가... 모르는 사람들이 내 선택을 병적인 것이라 말하는 모습을 보면 초현실적인 기분이 든다. 내가 트랜스라는 걸 생각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것은 나를 사회 정의에 더욱 공감하고 참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 외에는 내 현재와 거의 관련이 없는, 내 과거에 관한 사실일 뿐이다. 어떻게 그것이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가? 어째서 나의 평화에 독설, 폭력, 보호가 필요한가?

p.289

세상 속 다양한 소수자들은 스피커의 기회를 다양하게 갖지 못한 채, 주류라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 쉽게 논쟁의 대상이 되고 함부로 폄훼된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는 쉽게 일반화되어 두루뭉술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자신은 자신의 진실을 털어놓음으로써 퀴어와 트랜스로 살아가는 삶에 관한 꾸준한 오해를 없애 줄 또 하나의 먼지일 뿐이라고 말하는 엘리엇 페이지.

'성확정 조치를 향한 공격과 우리를 침묵시키려는 시도가 갈수록 극심해지는 지금'

자신의 삶을 용기 있게 드러내어 말할 수 있는 그가

네 살 때부터 자신이 여자가 아님을 선명하게 감각했다는 점에서 퀴어들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마침내 그 자신으로 살겠다는 다짐은 어쩌면 살아온 평생을 바친 고민의 과정, 결코 가볍게 이야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걸 생각했다.

영화 <주노>가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둘 때 스스로를 숨겨야 한다는 압박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점이 아팠다. 화려하고 높은 곳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빛날 때, 가장 날카롭게 스스로를 찌르고 자책하는 아이러니는 자아를 얼마나 깊이 절망하게 만들었을까. 가장 큰 성취를 이룬 순간에 가장 그 자신과 멀어져야 했던 아픔, 괴리감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의 세밀한 일화와 감정선을 따라가보면, 일상과 매스컴을 통해 흔하게 재생되고 강화되는 편견을 보게 된다. 레드 카펫에서 시스는 그들의 파트너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럽고 때때로 그들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드는 일이지만, 퀴어에게는 감춰야 할 일이 된다. 나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장면들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일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세상의 모든 규율은 주류에 의해 만들어지고 공고해진다. 자라오면서 어린 소년이 느껴야 했을 혼란스러운 감정과 저도 모르게 스며들었을 죄의식을 떠올렸다.

할리우드의 바탕은 퀴어함을 지렛대처럼 활용하는 데 있다. 필요한 순간에는 치워버리고, 이익이 될 때는 끄집어내면서 자기들끼리 뿌듯해하는 것이다. 할리우드는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때늦게, 한참 뒤처져 반응하고 따라간다. 할리우드라는 깊숙한 벽장은 수많은 비밀을 묻어 버리고 그것이 불러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내가 퀴어라는 것 때문에 벌을 받는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대놓고 학대하면서도 보호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가 얼마나 많은 특권들을 지녔는지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올바른 선택, 불편한 선택을 하기 위한 행동과 돌봄의 필요성을 말할 수 있을 터였다. 앞에 나서는 것은 그저 나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커밍아웃한 채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지닌 특권들이 없는, 앞으로도 잡지 표지에 실릴 일 없을 무수히 많은 타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엘리엇 페이지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퀴어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와중'에도, 그가 가진 특권을 누릴 수 없는 무수한 타인들을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입장과 무수한 환경의 차이 속에서 얽히고설킨 채 살아간다.

어쩌면 퀴어는 '자기 자신으로 산다'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일이 아닌가 한다.

누구나 타인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 자신이 느끼고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 선명한 그 자신을 마주하며 살 수 있는 기쁨.

이 책을 '퀴어'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치열한 고민을 이어가는 사람에게 권한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성공과 성장을 돕는 이야기도 좋지만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부지런히 밖으로 꺼내어지고 비로소 '들리고 보이기'를 희망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체 폭주하는 듯한 세상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게. 물론 부족하지만 나도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길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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