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왜곡되고 와전된 말 중 하나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다. 아마 독재정권에서 자신들의 정권을 합리화하기 위해 퍼뜨린 게 아닐까 싶은 이 말은 위대한 철학가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로 왜곡되어서 수십 년 동안 전해져 왔다. 이 말은 일단 가장 먼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딴 말을 하지 않았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절대 '악법도 법이라서' 죽은 게 아니고, 소크라테스는 그런 식의 말을 절대 한 적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조금은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고소됐고, 재판 과정에서 타협을 할 수도 있었다. 또한 사형을 선고받은 후에도 감옥에서 도망쳐 해외로 도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그런 길을 택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어쨌거나 악법도 법이라는 개떡 같은 논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이 평생 동안 지켜온 정의에 관한 신념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는 변명하거나 도망감으로써 자신이 믿어온 정의를, 그 신념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여러모로 중국의 공자와 비슷한 점이 많다. 소크라테스와 공자 모두 영향력은 생전에도 매우 컸으나 정치에 나아가거나 권력을 가진 적은 없었고, 대신 여러 제자를 양성했다. 또한 둘 모두 생전에 직접 책을 집필한 적은 없었고, 그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었다. 다만 이때 만들어진 '책'에서 둘의 차이가 생긴다.
공자의 말씀을 집대성한 <논어>는 저자가 명확하지 않다. 공자의 제자들이 그의 사후에 그가 평생 동안 했던 말들을 정리해놓은 것이기에 그렇다. 또한 <논어>는 공자의 가르침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금언집에 가깝고, 어떻게 전달이 됐건 공자가 '직접' 했다고 하는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소크라테스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수많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 저자가 플라톤으로 매우 명확하며 플라톤 또한 소크라테스에 버금가는 철학자다. 그리고 플라톤의 책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들은 실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지의 여부가 불명확하다. 무엇보다 플라톤의 책은 소크라테스의 말들을 집대성한 금언집의 형식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와 다른 인물들의 대화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가깝고, 소크라테스 또한 이 이야기에서 플라톤의 생각을 대변하는 대변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위의 말대로 <국가>는 기본적으로 이야기다. 그렇기에 다른 이야기들처럼 특정한 세계관이 있고, 그에 맞는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논어처럼 단편적이지 않은 매우 길고 연결된 이야기다. 그리고 그 긴 이야기의 과정에서 결국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행복과 정의가 함께 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박이 오간다.
소크라테스는 잘 알려져 있듯이 자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먼저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모두 경청하고, 그에게 되려 그의 논리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상대방의 논리에 있는 허점과 모순을 스스로 알게 하는 식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어떤 것에 대해 무엇인지 명확히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그 대상에 대해 잘 모른다는 입장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라 했다. 소크라테스는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는 백지의 상태로 한 대상을 알아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철학자가 가져야 하는 자질 중 하나다. 끝없이 지혜를 추구하고, 탐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자세 말이다. 철학자는 비록 자신이 특정한 신념을 가지게 되어도, 그 신념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면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끝없이 찾고 탐구해야 한다.
<국가>라는 책은 매우 어렵고 난해하게만 보이지만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에 기반을 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의로운 삶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이 과정에서 현대에서도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는 주제 또한 등장한다. 바로 "왜 정의로운 사람보다 부정의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사는가?"에 대한 문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그에게 왜 현실의 수많은 부조리 속에서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내세에서 보상받는다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은 하지 말라고 미리 말을 하기도 한다.
<국가>에서는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부정의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 자신이 행복한 길이 아니고, 개인과 국가 모두 정의롭게 자신이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한다면 그때 진정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되고, 모두가 서로 신세를 지면서 함께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매우 좋은 얘기다. 그런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가 노예들의 일방적인 희생 속에서 이루어진 나라라는 것과 여기서 말하는 개인이란 시민권을 갖춘 성인 남자만 해당한다는 것을 빼면. 하지만 이러한 주제, 즉 '정의로운 삶이 곧 행복한 삶인가?', '왜 세상은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않은 이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보이는가?'라는 질문들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 책은 플라톤의 <국가>의 핵심적인 내용을 말하며 그것을 현대사회의 상황에 대입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뻔한 사례나 단순한 대입이 나타나고 그 깊이가 조금 얕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국가>라는 매우 길고 어려운 책의 핵심을 짚어서 <국가>가 난해한 주제에 대해 다루는 것이, 아닌 지금 현실에도 대입 가능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다루는 책임을 알려준다. 또한 후에 직접 <국가>를 읽을 때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