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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jlovesem님의 서재
  • 상실의 기쁨
  • 프랭크 브루니
  • 16,200원 (10%900)
  • 2023-03-17
  • : 905
다소 모순되는 제목의 책을 만났다. 상실이 기쁨이 될 수 있는가. 대상이 무엇이든 상실을 겪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슬픈 일이 아니었던가.
와인을 넉잔이나 마시고 잔 다음날 아침 오른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증상을 겪게 된 저자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 증상을 가벼운 숙취, 수면 부족으로 여겼으며 오른쪽 눈 앞의 안개는 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그것은 고칠 수 있는 증상이고 치료가 필요하면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이른바 절차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후 여러 병원과 의사들을 만나 필요한 검사들을 하고 내려진 종합적인 결론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조금씩 본인에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글에 담겨있다.

30년 이상 저널리스트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글을 쓰는 꽤 성공한 삶을 살아온 저자는 실명이라는 난관에 부딪힌 상태에서도 주저앉아 슬퍼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방치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저자는 우리 모두는 ‘상실’을 겪은 상태에서도 ‘기쁨’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 이것은 황혼에 관한 이야기다. 낮은 영원하지 않으며 빛은 가차없이 사그라든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이야기다. 인생의 정점에 이르러 우리는 어디선가 빌려온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것임을 자각하게 되는 이야기다. 너무나 달라진 온도와 분위기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황혼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풍부하며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내 세계는 흐릿해졌지만 동시에 예리해졌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내쉬었다. 나는 새로운 걱정들을 인사로 맞이하고 과거의 걱정들에 작별을 고했다. 한 친구는 내 상황을 재치 있게 한 줄로 요약했다.
”한쪽 눈이 감기면 다른 쪽 눈이 뜨인다.“

우리 대다수는 몸에 장애가 없다. 두 눈과 귀도 멀쩡하고 얼굴도, 두개의 팔과 다리도 있다. 치명적인 암덩어리가 몸 안에 기생하지도 당장 먹을 음식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상태도 아니다. 대체적으로 평온하다. 집에는 가족들이 있고 매일 출퇴근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으며 오늘 저녁에 사랑하는이와 어떤 메뉴로 저녁 시간을 보낼까 생각한다. 하지만 난 행복하다하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다들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그것에 몰두하며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간다.

책은 저자에게 찾아온 뇌졸중으로 인해 실명을 겪게된 본인의 이야기로 시작하며 이후로 그가 만난 수많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다른 병이 원인이 되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 많은 이들, 20년 넘게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여성, 피부암으로 청력을 상실한 작곡가,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특수부대원...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패션잡지 에디터 보비의 이야기가 인상깊은데, 그녀는 뇌졸중을 겪으며 후유증으로 몸을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왼쪽 눈꺼풀만 깜빡일 수 있었는데 그것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글도 썼다. 그녀는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가장 면밀하게 집중하는 사람들은 내가 그저 피상적으로 알던 사람일 때가 많았다. 그들과 나눈 담소는 그들의 깊이를 은폐하고 있었다. 나는 눈과 귀가 먼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한 사람의 진정한 본성을 보려면 강렬한 재앙을 겪어보아야 하는 걸까?”

누구나 죽을 때 까지 장애나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눈을 감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장할 수 없다. 우리의 몸은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기에 어떻게 살다가 죽게 될지 알 수 없다. 그건 지금부터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100% 예방할 수 있는것도 아니며 예측 불가다.
지금부터 건강 관리를 잘 해서 건강하게 늙어가자, 라고 자기계발서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삶에 어떤 비극이 찾아와도 그것에 잠식당하지 않을 힘을 갖는 것, ‘언제나 무슨 수가 있지’를 되새기며 첫번째 자아가 손상되거나 죽어도 두번째 자아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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