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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관자 효과
  • 캐서린 샌더슨
  • 15,300원 (10%850)
  • 2021-08-25
  • : 292

학창 시절 심리학 서적을 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인간의 심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던 그 책은 '방관자 효과'라는 용어와 함께 제노비스 사건을 다루었는데, 그 내용을 읽는 내내 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제노비스 사건은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한 여성이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다. 살인사건 자체도 꽤나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시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무려 38명이나 되었다는 것. 사건을 목격한 38명의 사람 중 그 누구도 살인을 저지하거나 경찰을 부르는 등 도움을 주지 않았으며, 혹여나 누군가 자신을 신고할 것을 걱정한 범인이 자리를 떴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 누구도 제노비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많은 분노와 비판이 그들에게 쏟아졌다. 뒤늦게 책으로 이 사건을 접했던 나 역시 같은 인간으로서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이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문과 울분을 느꼈을 정도였다.


훗날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과장되었음이 밝혀졌지만, 사건이 불러일으킨 충격과 이슈는 여전하다. 오히려 이후 이루어진 여러 연구들을 통해 당시 그 사건을 목격했던 이들이 특별난 인물이라거나 악인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 큰 충격으로 변했다.


이처럼 우리는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평범한 사람인 채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다만 현재 우리는 앞선 사건을 통해 군중 속에서 침묵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의 위험성을 알고 있고, 그러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앞으로 찾아올지도 모를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연구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책 <방관자 효과>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


<방관자 효과>는 제목 그대로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놓였을 때 침묵의 방관자가 되기를 택함으로써 일어나는 나비 효과와 어마어마한 비극들을 집중해서 살펴보는 책이다. 여는 서적들처럼 그러한 사건이 있었으며 이것은 인간의 심리를 보여준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연구와 통찰을 통해 사람들이 왜 침묵하기를 택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함께 살펴본다는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첫 번째 파트인 선한 사람들의 침묵에서는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나쁜 행동을 하게 만드는 상황(환경)과 사람의 심리적 요인에 대해 살펴본다. 이 파트에서 우리는 군중 속에 있을 때와 혼자일 때, 권위 있는 인물이 존재할 때와 존재하지 않을 때, 스스로가 하고 있는 행동 혹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고 확신할 때와 확신하기 어려울 때, 익명성을 얻을 때와 책임감을 얻을 때, 피해자가 자신과 관련이 있는 인물일 때와 아닐 때 등 수많은 환경적, 심리적 요인들이 평범한 사람을 침묵의 방관자가 되도록 만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파트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5세 아동들 역시 또래 아이들과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 다른 양상을 보이며 책임 분산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고작 5세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도 상황에 따라 눈치를 보며 침묵하기를 택한다니! 이타적인 행동과 남을 돕는 마음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일찍부터 얼마나 구체적이고 잘 이루어져야 하는지 알고 또 고민하게 된 부분이었다.


또 다른 것은 우리가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침묵하기를 택할 때 '(상대방은) 이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거야'라는 오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싫어하지만 상대방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생각. 예를 들어 "캠퍼스 내에서 과도한 알코올 섭취에 대해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끼지만, 친구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경향(137p)", 그리고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다른 학생들이 술을 더 많이 마신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학생들은 알코올 섭취를 늘리는 경향(141p)"이 생긴다는 것. 오해가 일으키는 여러 문제들과 이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오해를 바로잡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내 가슴에 콕 박혀들었다. 이는 앞으로의 삶에서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었다.


두 번째 파트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방관에서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떠한 사건들 대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침묵이 일어나는 장소인 학교와 직장의 사례들을 살펴본다. 누구나 가해자 혹은 방관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집단의식, 잘못된 조직 문화, 반대 의견을 냈을 때 따라올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등 침묵하게 만드는 여러 원인들을 살펴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달라져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파트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또래 친구들은 그럴 거라는 생각이 오해라는 것을 정정하는 것만으로도(단순히 큰 포스터를 학교에 부착하거나 20분짜리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따돌림이 감소하고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이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목소리를 높이고 옳지 못한 상황에 개입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반복하면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실을 인지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훈련을 통해 방법을 습득한 사람은 저항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 이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방법이 우리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파트인 행동하는 양심이 되는 법에서는 침묵 대신 저항을 택한 이들의 사례와 함께 도덕적인 용기란 무엇인지, 무엇이 이들을 도덕 저항가로 만드는지 살펴보고, 도덕적인 용기를 가진 도덕 저항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이 파트에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존감,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행동하는 자세, 훈련을 통해 길러낸 공감, 연대, 실천 등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믿음을 가지고 훈련하고 실천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방관 대신 행동하는 사회,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함을 보여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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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비극을 일으킨 침묵과 방관에 대한 사례가 이토록 많다는 것에 꽤 큰 충격을 받았다. 평범하디 평범한 저자의 아들의 사례와 더불어 여러 사례들을 보면서 타인은 물론 나 자신에 대한 불신,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보여주는 사례 역시 많음을 확인하고, 그 방안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님을 확인하면서 잃었던 믿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침묵하는 이도 인간이지만 저항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인간임을, 결국 인간이 인간을 위하고 사회를 더 이롭게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하며 깊은 안도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다만 앎과 행동은 별개의 문제이니 만큼 나 먼저 의식하고 훈련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은 잊지 말아야겠지.


비극을 보며 슬퍼하고 무서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줬다는 점에서 <방관자 효과>는 내가 올해 읽은 책 중 잘 읽은 책으로 꼽고 싶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책을 제공 받아 자유롭게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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