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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님의 서재
  • 기억
  • 복일경
  • 15,300원 (10%850)
  • 2025-11-15
  • : 200
이른 아침에 걸려 오는 전화는 언제나 그녀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끌어내리곤 했다.
“실종 신고하셨죠?”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일상이 무너져있던 윤주의 삶을 구원해 준 건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고향의 집과 땅을 팔고 윤주의 집으로 들어와 손녀 예린을 돌보며 윤주가 직업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던 일상도 잠시, 시어머니가 중증 치매 진단을 받게 되며 다시 일상은 무너지고 만다.

밤늦게까지 공부방을 운영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하는 예린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챙기는 윤주와, 학교를 마친 뒤 일찍 돌아와 할머니가 어질러 놓은 집안을 치우는 예린. 집안에서 가시지 않는 악취와 돌봄 노동에 지쳐있던 두 사람에게 또 다른 구원자가 나타난다. 윤주의 어머니이자 예린의 외할머니였다. 그렇게 세대도 다르고 성씨도 다른 네 여자가 한집에 모여 살게 된다.

‘치매가 아니었다면 시어머니의 돌봄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일이었다. 그것은 여자란 이유로, 또 가족이란 이유로 끝없이 계속되는 굴레’라는 문장에 왠지 서늘해졌다. 윤주의 가족만이 이 굴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여성들이 이 굴레를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복일경 작가가 그려내는 이 여성 서사가 우리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어딘가에 갇힌 듯한 답답한 느낌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결말에 다다르고 나서도 안심할 수 없는 책이다.

윤주는 다짐한다. ‘그 굴레를 예린에게까지 물려주지 않겠다고. 예린의 시간만큼은 돌봄이 아닌 자유로 채워지기를 바란‘다고. 과연 윤주의 이 다짐은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 이 굴레는 과연 끊어질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내 윗세대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다하고 나면 내가 어느새 돌봄을 받을 처지에 놓여있는 인생의 사이클 속에서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해와 달의 뜨고 짐, 빛의 명도를 묘사하는 문장으로 주인공의 심리와 다가올 앞날을 대변하며 저수지에 뜬 두 개의 달이 비추는 윤주의 모습으로 막을 내리는 이 책, 거센 파도처럼 밀려드는 기억의 조각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마음을 가라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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