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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d6607님의 서재
  • 소수의견을 외치는 당신이 세상을 바꾼다
  • 이케다 기요히코
  • 13,320원 (10%740)
  • 2018-10-08
  • : 39

다시보기라 하기 보다 서평에 가깝다. 네이버 카페에서 서평 이벤트로 진행되서 알게 된 책으로 읽고 난 뒤 서평을 남기려 한다.

 

본 저서는 사람의 생존본능과 그것을 생물학에 파생된 동조압력으로 설명하면서 동물과 인간비교를 통해 다수의 의견에 무작정 따르는 행태를 지적하고 그 결과가 늘 옳지는 않으며 위험성을 내포한다고 주장한다.

 

제목인 ‘소수의견을 외치는 당신이 세상을 바꾼다.’ 이 문장은 저자가 전체 내용을 집약한 주제이고 그가 염원하는 조국의 방향이라는 인식이 한 쪽씩 넘길수록 가능했고 확신으로 굳어졌다. 저자가 글 쓰는 시대적 배경이 일본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독자들이 본다면,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는 공감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가능하리라 본다.

 

일본은 현재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의원내각제로 입법부가 중의원, 참의원으로 나뉘어져 있고 실질적 행정부 수반인 총리는 국회 다수당 대표가 맡는다. 그리고 총리가 내각을 구성한다. 즉 우리나라와 달리 행정부의 대표자를 뽑는 국민의 주권위임 행위가 직접적으로는 없고 국회를 통한 간선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참고로 알고 책장을 넘기면 좋겠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역기능적인 측면을 언급하고 다수결이 양산한 비극(성과주의, 연대책임, 포퓰리즘 등등)을 예로 들며 민주주의를 ‘소수를 억압하는 제도’로 규정하고 있다. 나는 그 정의에 ‘대체로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의견을 드리고 싶다. 민주주의는 저자가 말한 대로 다수결의 원칙과 함께 간다. 한 사회에 공동의 문제, 가치관이 발생하고 충돌했을 때 사회적 공론화, 여론수렴, 관련 정부부처의 책임자와 학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청회를 통한 다양한 의견을 수합하여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그리고 선택된 그 방안이 정책과 법이란 구체적인 형태로 집행될 때 상대적 소수의견은 덜 반영되는 것이 사실이다.

 

주권자인 시민은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자신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결정한다. 그리고 형성된 여론과 다양한 매체에서 오는 정보를 통해 상대적 다수의견에 동조압력을 받을 수 있다. 우리(사람)는(은) 다수 의견에 동조할 때 얻는 안정감과 때로는 책임의식을 덜 느끼려고 편승하는 합리화 기제를 의사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나와 다른 소수의견에 옳다는 점을 알고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때, 그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회심하려는 의지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적신념과 경험, 욕망과 공공선 등 다른 요인을 배제하여 선택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책의 부제인 ‘무조건 다수의 편에 서는 당신은 비겁하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동조압력에 영향을 받아 다른 요인은 도외시한 채 무조건적 선택을 한 이들을 가리킨다면 일정 부분 공감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그것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소수의견을 압살하는 것은 나는 결단코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힌다. 이 부분에서 집필자와 내 생각은 일치한다.

 

책을 마지막 열 쪽 남겨두었다. 그리고 닫는 글의 제목을 보았다.

 

‘일본은 최대다수 최대행복을 실현할 수 있을까’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과 심정에 안타까움을 엿본 것은 아마도 지난 5년 동안 한국도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목격했고 전환기를 겪는 사회에 서 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나라 내·외부적 상황은 다르지만 민주주의 핵심 내용은 주권재민이다. 이 대원칙은 권력자는 왕이 아니라 오직 국민을 섬기는 존재로만 역할을 한다는 지엄한 선포임에 틀림없다. 다수의 선택, 그것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정책적 결정과 집행을 거치며 그 모든 행위가 가져온 결과가 긍정적 전망보다 부정적 효과가 상회한다면 민주주의는 그 결정을 번복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이다. 다수가 생각을 돌이켜 주권위임행위를 수정·철회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 그 자체이다.

 

소수의견이 없는 민주주의와 다수결은 사실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상대적 다수의견이 팽배할 때, “아니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이 점을 간과할 수 있다. 다시 논의하고 타협하자.”는 소금의 역할이 필요하다. 내 선택과 신념, 정보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사람, 말, 행동을 바라보면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회는 천천히 다가올 것이다. 저자가 비분강개(悲憤慷慨)의 심정으로 자신의 조국을 본다면 난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동시에 오지랖 섞인 한마디 전하려 한다. “많은 소수의견이 잉태되어 당신이 바라는 미래에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이루길 바랍니다.”

 

끝으로 이 책이 저자의 관점을 강조하고 다른 가능성을 배제한 이유로 읽기 힘들던 독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 의견이 다수라면, 나는 서평할 기회와 여태까지 살펴보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 한 번은 읽고 싶은 책이라고 소수의견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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