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는 언제나 반갑다.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 보면 택배 상자가 다소곳이 또는 '떡'하니 나를 기다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렇다면 배달원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택배 배달원이다.
대부분은 택배만큼도 가치를 느끼지 않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다.
행운동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누군가에게 크든 작든 무언가를 전달한다.
공기처럼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런 그의 단조로운 삶에 예정에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끼어 든다.
일일이 쪼개져 살아가는 오늘날의 인생.
두터운 보호색을 하고 웅크린 채 촉수만 내민 숨죽인 삶.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그 삶을 홀로서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인데.
소설의 주인공 행운동은 관계맺기를 간절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의도치 않은 인연으로 여러 사람과 만나게 된다.
그 만남과 대화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얘기하려 했을까?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매우 특이한 상황의 연속이다.
그런 일탈적 상황을 작가의 독특한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착각하게 만든다.
주인공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끝나지 않을 듯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의 대화는 더없이 무미건조하며, 그 본질적 의미를 쉽게 보여 주지 않는다.
나는 이런 류의 문체를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접해 봤다.
소설에서 채택할 수 있는 대화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 소설의 작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주인공을 앞세워 이야기한다.
이런 건조한 대화는 얼굴을 마주하거나 등지고 앉았거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그의 표정을 보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타인의 간섭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이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공통점이다.
외로움에 힘겨워하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
이것도 우리의 공통점이다.
그러면 그리워하는 누군가는 어떤 누구일까?
간섭하지 않고 앞에 있거나 옆에 있어 주는 사람.
소설속의 행운동은 그런 인물이다.
없는 듯 있어 주는 덕(탓?)에 여러 사연과 감정을 들어야만 하는, 원치 않더라도.
그래서 생경한 그의 말소리는 오히려 명료하고 울림이 깊다.
소설은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 듯 하며, 무슨 말을 많이 하는 듯도 하다.
파편화된 존재와 그들을 이어주는 거미줄처럼 가늘지만 질긴 인연.
신기하게도 사막의 모래처럼 거칠게 사박거리는 대화는 나에게 끊임없이 물어본다.
당신의 존재는 지금 메말라 가고 있지 않은지.
정혁용 작가의 이전 작품을 보고 싶고,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